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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억정사터 대지국사탑비

蔥叟 2018. 6. 12. 04:39

충주 억정사터 대지국사탑비

 

억정사(億政寺)에 전해오는 비(碑)로, 대지국사가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1390년(공양왕 2)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하고, 대사의 인품과 학력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엄정면 괴동리 억정사지의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서서 괴동리 앞들을 향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받침돌은 아무런 문양 없는 장방형이다. 길이 213㎝, 너비 195㎝, 높이 50㎝이다. 받침돌은 비공 가까이에서 약간 높게 2단으로 괴임 장치를 만들어 비신을 잘 지탱하도록 했다. 비신의 너비는 23.5㎝로 좁으며 앞뒷면은 130㎝로 널찍하고 시원한 감을 준다. 억정사 대지국사비의 덮개돌은 없다. 일반적으로 비는 덮개돌이 지붕돌[옥개석] 형태이나 이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데 반해 억정사 대지국사비는 뚜껑돌[개석] 없이 비신 위쪽의 양 모서리를 길이 44㎝ 정도 잘라낸 귀접이 모양을 했다. 고려 후기나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과도기적 형태로 보인다.

 

전제(篆題)는 ‘대지국사비명(大智國師碑銘)’이고, ‘유명조선국충주억정선사고고려왕사시대지국사비명(有明朝鮮國忠州億政禪寺故高麗王師諡大智國師碑銘)’이라 되어 있다. ‘가정대부예문춘추관학사도평의사사사겸성균대사성嘉靖大夫藝文春秋舘學士都評議使司使兼成均大司城’ 박의중(朴宜中)이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지었다. 글자는 앞면과 뒷면에 음각하였고, 앞면에는 대지국사의 출생과 이력 등을 쓰고 뒷면에는 크게 7단으로 구분하여 대사의 문도와 건비위원의 이름을 적었다. 글씨는 해서체로 썼으며 2,000여 자에 달한다.

 

엄정면 괴동리 과수원과 동편의 경작지 일대가 절터로서, 이곳에서 기와 조각과 자기 조각이 출토되고 있으며, 축대와 지붕돌 2매, 탑신 1매 등이 존재한다. 근처에 조선시대 하마비도 있다. 흔적으로 보아 억정사는 고려시대에 번창했던 사찰로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절이 없어진 시기는 알 수 없다.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는 1393년(태조 2)에 의정대부 박의중이 쓰고 승려 혜공이 조각하여 10월에 중원이 세운 것이다. 탑비는 부도와 함께 조성하는 것으로, 일종의 추모비이자 기념비라 할 수 있다. 억정사 대지국사비의 비문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비문에는 승려들뿐만 아니라 세속의 문도들, 비문의 작자, 각자한 사람, 그리고 목사, 대호군, 전의(典醫), 판관, 옹주 등 지방 관리에서부터 정부 관원, 왕족에 이르는 다방면의 동참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얼마나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탑비 건립에 동참했는가를 알 수 있다.

   

▲대지국사탑비

 

▲대지국사탑비

 

▲대지국사탑비

 

▲대지국사탑비 제액

 

▲대지국사탑비 비좌

 

 

 

<2018.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