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지리산문화권

남원 방어의 거점 - 교룡산성

蔥叟 2018. 5. 23. 08:19

남원 방어의 거점 - 교룡산성 

 

남원 교룡산성은 본래는 백제 시대에 쌓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의 성은 조선시대에 축성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남원성곽조」와 『세종실록』 「지리지」, 『문헌비고(文獻備考)』,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기록되어 있다. 1593년(선조 26)에 권율이 승병장 처영에게 명하여 교룡산성을 수축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남원 바로 서북쪽의 밀덕봉과 복덕봉 등이 산세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유사시 대피하기 좋은 천혜의 요새지이다. 『태종실록』10년조에 남원 교룡산성이 기록되어 있으며, 1704년(숙종 30)에 순찰사 민진원이 산성의 수축을 상계하여 김창석과 박창윤이 일을 담당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성안에는 우물이 99개나 있었다 한다.

 

현재의 산성은 남원시 서북방의 해발 518m인 교룡산 정상을 중심으로 양쪽 능선을 따라 남원 시가지 쪽으로 이어져 있다. 성의 규모는 둘레 3.1㎞ 정도이며, 내부의 부속 시설로는 군창과 우물이 있다. 형식은 포곡식 산성이며, 축성은 판상 할석을 사용한 협축·내탁법이 이용되었다. 산 중턱에 성벽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으며, 동쪽과 접한 곳에는 수구(水口)가 있고 남원 교룡산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홍예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 홍예문은 기역(ㄱ)자형의 옹성으로 둘러쌓았으며, 성문 안 바로 북쪽에 남원 교룡산성 중수비가 서 있다. 홍예문은 넓이 2.25m, 높이 2.40m이고, 홍예의 두께는 1.63m이다. 옹성은 북쪽벽이 6.2m, 동서로 뻗다가 일직선으로 꺾이었고 남쪽에 6.3m 정도 남아 있다.

 

▲교룡산성 옹성

 

▲교룡산성 옹성

 

▲교룡산성 홍예문

 

▲교룡산성 홍예문

 

▲교룡산성 홍예문

 

▲교룡산성 성벽

 

▲교룡산성 성벽

 

▲교룡산성 성벽

 

▲교룡산성 성벽

 

▲교룡산성 성벽

 

▲교룡산성 성벽

 

▲교룡산성 성벽

 

▲교룡산성 성벽

 

▲교룡산성에서 본 남원시내

 

▲교룡산성에서 본 남원시내

 

 

 

  <2018.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