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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관왕묘

蔥叟 2018. 5. 20. 04:23

남원 관왕묘 

 

조선시대에 지은 관우(關羽)[?~219]의 조각상을 모신 사당. 중국 삼국시대의 명장인 관우(關羽)를 배향한 곳이다. 이 묘는 원래 임진왜란 때 이곳에 주둔하였던 명나라 장군 리우띵(劉綎)이 자기들의 수호신으로 숭배하던 관운장을 모시기 위하여 선조 32년(1599) 남원부 동문밖에 세웠던 것이다. 그 후 영조 17년(1741)에 현 위치로 옮겨 짓고, 매년 춘추로 제사지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 촉한(蜀漢)의 영웅 관우를 향사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부터이다. 우리나라에 원병으로 왔던 중국 명나라 군대가 왜군과 싸우며 일진일퇴하던 중 밤이 되어 하늘에서 수천의 신병(神兵)이 나타나 왜군을 물리쳤는데, 당시 신병을 거느리고 나타난 장군이 바로 관우였다고 한다. 이에 관우의 고마움을 생각하여 그를 숭배하는 묘(廟)를 세웠다고 한다. 관왕묘는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다. 남원 관왕묘는 현재 관우를 흙으로 빚은 소상(塑像)을 봉안하고 춘추로 향사하고 있다.

 

조선시대 1599년(선조 32)에 남원부 동문 밖에 창건하였다가 1716년(숙종 42)에 현감으로 있던 박내정(朴乃貞)에 의해 동문 성안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1741년(영조 17)에 당시 남원부사로 와 있던 허린(許燐)이 현재의 왕정동 51번지 위치로 옮겨 놓았다.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향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본당 탄보묘[誕報廟 : ‘관우(關羽)의 탄신과 왜적을 무찌른 데에 대한 보은’이라는 뜻]는 전형적인 사당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건축이며, 대문은 솟을삼문 형태이다. 사당 안에 관우의 소상이 중앙에 모셔 있고 앞에 시립한 두 부장의 소상이 서 있다. 사당에는 ‘충의와 절개가 만고의 제일(貞忠大節 千秋第一)’이라는 주련(柱聯)을 비롯한 네 개의 주련이 네 기둥에 걸려 있어 관우의 위용과 덕망을 칭송하고 있다. 사당 앞에 ‘명조도독유정건묘사적비(明朝都督劉綎建廟事蹟碑)’가 세워졌고, 현감 박내정이 중건을 기념하여 세운 ‘무안왕비(武安王碑)’가 있다. 솟을삼문 밖에는 관왕묘 사적을 표시하는 조그마한 비석이 있다.

 

남원 관왕묘에는 흙으로 빚은 소상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관우를 모시며 춘추로 제사를 지낸다는 점에서 관우에 대한 민간 신앙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탄보묘

 

▲탄보묘

 

▲탄보묘

 

▲탄보묘

 

▲탄보묘 내 관우소상

 

▲탄보묘 내 무인상

 

▲탄보묘 내 무인상

 

▲탄보묘 내부 그림

 

▲탄보묘 내부 그림

 

 

 

  <2018.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