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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의 무대 - 남원 만복사터 가람배치

蔥叟 2018. 5. 13. 06:55

금오신화의 무대 - 남원 만복사터 가람배치 

 

197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남원 만복사지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1984년에 대략 사찰의 중요부만 발굴 조사를 완료하였다. 이 발굴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남원 만복사지는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堂式) 가람 배치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동안 남원 만복사지의 가람 배치는 ‘동탑서전식(東塔西殿式)’이라고 보았던 학설은 『동국여지승람』과 『용성지(龍城誌)』의 두 기록을 근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기록은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고려 문종 때의 만복사 가람배치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만복사 창건 당시의 건물들이 퇴락된 뒤의 현상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다 발굴 조사 결과 실제 고려 문종 때 만복사는 일탑삼금당식 가람 배치였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발굴 조사시 많은 건물의 흔적을 찾았으며 청자와 백자, 많은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시대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오층석탑(보물 제30호), 불상좌대(보물 제31호), 당간지주(보물 제32호), 석불입상(보물 제43호) 등이 현재 절터 내에 남아 있다. 고구려식의 절 배치를 따르고 있으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찰의 하나로 연구 가치가 크다.

 

서금당터에는 고려 시대의 육각형 석조 불상 대좌가 남아있다. 이 대좌는 거대한 하나의 돌로 상대와 중대, 하대를 조각한 것으로 육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남원도호부 「불우조(佛宇條)」에 “만복사는 기린산에 있다. 동쪽에 5층의 불전(佛殿)이 있고 서쪽에 2층의 불전이 있는데 그 안에는 길이 35척(약 10.3m)의 동불(銅佛)이 있다. 고려 문종(文宗) 때 창건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석조 대좌는 10.3m의 청동 불상을 봉안했던 대좌로 추정된다.

 

남원 만복사지 석조 대좌는 높이 1.5m, 한 변의 길이 1.2m의 거대한 화강암 한 돌로 조각되었는데, 하대는 각 측면에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꽃을 장식했으며, 윗면에는 연꽃 모양을 조각하였다. 중대는 낮으며 짧은 기둥을 조각하였고, 중대보다 넓은 상대에는 평평한 윗면 중앙에 불상을 끼웠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진 구멍이 뚫려 있다. 연꽃이 새겨졌던 측면은 주변 전체가 파손되었다. 남원 만복사지 석조 대좌는 35척[약 10.3m]의 청동 불상을 봉안했던 석조 대좌로서 화강암의 한 돌로 조각되었는데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8각 3단 대좌에서 벗어난 6각형의 불상 대좌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만복사터 가람배치

 

▲서금당터

 

▲서금당터

 

▲서금당터

 

▲서금당터

 

▲서금당터

 

▲서금당터 불대좌

 

▲목탑터

 

▲목탑터

 

▲목탑터

 

▲목탑터

 

▲목탑터 초석

 

▲목탑터 계단

 

▲북금당터 불대좌

 

▲북금당터

 

▲북금당터 불대좌

 

▲강당터

 

▲강당터

 

▲강당터

 

▲동금당터

 

▲동금당터

 

▲동금당터

 

▲동금당터

 

▲석등대석

 

▲석등대석

 

▲석등대석 간주석 꽂이

 

 

 

  <2018.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