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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의 무대 - 남원 만복사터 당간지주

蔥叟 2018. 5. 11. 08:37

금오신화의 무대 - 남원 만복사터 당간지주 

 

고려 문종 때 지어진 만복사터. 『동국여지승람』 권지39, 남원도호부 「불우조(佛宇條)」를 보면, “기린산 아래에 있는데, 동쪽에 오층전이 있고 서쪽에 이층전이 있으며, 전 내에는 동불이 있는데, 길이가 35척(약 10.6m)이다. 고려 문종 때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숙종 때에 간행된 『용성지(龍城誌)』에는 “만복사 내에는 대웅전, 약사전, 장육전, 영산전, 보응전, 종각, 천불전, 나한전, 명부전 등의 불전이 있었으나 정유재란(1597)의 병화(兵禍)에 불타 잿더미가 된 뒤 사찰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만복사에는 5층과 2층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법당이 있었고, 그 안에는 높이 약 10m의 불상이 있었으며,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과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큰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만복사는 불타버리고 말았다.

 

남원부사 정동설(鄭東卨)은 두 개의 방을 중창하여 승려들이 그곳에 머무르면서 사찰을 수호할 규칙을 만들게 하였다. 도선 국사는 남원부의 자리를 보고 사찰을 설립하여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세울 것이며, 축천에 철우를 설치할 것이며, 골회봉(고리봉의 다른 이름)에 철환을 설치할 것이며, 용담과 호산에 탑을 세울 것이며, 선원과 파근에 사찰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만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당간지주는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원래 지주 사이에는 돌, 혹은 철, 나무로 된 긴 당간을 세워 그 위에 깃발을 매달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 만복사지에는 당간은 남아 있지 않고 지주만이 남아 있다.

 

만복사지 당간지주의 건립 연대와 경위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아마도 만복사지가 창건된 시기에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지주는 만복사지 입구에 동,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양쪽 지주 모두 표면은 다듬지 않아서 매우 투박하면서도 거칠어 보이며 별다른 장식은 없는데, 기둥의 윗부분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모를 깎아 다듬었다. 지주의 안쪽 면 상단에는 직사각형의 구멍[杆溝]이 있고, 1m쯤 내려와서 당간을 고정시키는 원형의 간공(杆孔)이 있으며, 여기에서 2m쯤 내려와서 하부 간공이 있는데, 역시 원형으로 중앙의 간공과 같은 형태이다. 현재 흙과 모래의 퇴적이 심하여 하반부와 기단(基壇)이 매몰되어 있어 하부 구조는 알 수 없지만 원래는 당간을 세웠던 받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복사지 당간지주는 두 지주만 남아 있어 원래의 형태를 알 수는 없지만, 투박하면서도 소박하며 생략화된 기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 만복사가 창건될 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서, 고려 전기 당간지주의 모습을 전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만복사터

 

▲만복사터

 

▲만복사터

 

▲당간지주

 

▲당간지주

 

 

 

  <2018.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