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영가문화권

영주 석교리 석불입상

蔥叟 2018. 2. 4. 20:07

영주 석교리 석불입상

 

대형 석재를 깎아 만든 입상이며, 팔과 다리의 입체성이 반영되지 않은 투박한 조각이다. 입체를 다루는 솜씨가 아직 발달하기 전의 조각수법을 보여준다. 이는 신라하대에 불교의 대중화로 지방에서 일어난 새로운 조상(造像) 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주 지방의 조각이며, 2m에 이르는 규모와 불상의 양식적 특징 등으로 미루어 신라 하대인 9세기에 제작되었다고 판단된다.

 

이 불상은 발견 당시 목에는 금이 가고, 왼팔이 잘려나갔으며 발목 아래는 땅에 묻혀 불완전한 상태였고 광배도 없었다. 현재는 보수를 통해 다리 아래와 발의 세부묘사를 확인할 수 있다. 체구에 비해 머리가 커서 균형이 맞지 않으며, 목이 가늘어서 더욱 불안정하게 보인다. 경직되어 보이지만 길이가 적당한 다리에 비해 상체는 빈약하고 사실성이 떨어진다.

 

상투 같은 정수리[육계(肉髻)]가 큼직하게 솟아 있는 머리에는 작은 소라처럼 돌돌 말린 머리카락[나발(螺髮)]이 굵고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고졸하게 묘사되어 삼국시대의 석불을 연상시킨다. 보수 흔적이 남아있는 목에는 삼도(三道)가 명확하다. 몸에 꼭 붙어있는 오른팔이나 쳐진 어깨 등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신체는 상반신과 하반신의 차이가 크다.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에서 인체의 굴곡을 강조하려 했지만 가슴과 배의 양감이 별로 없어서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타원형의 옷 주름으로 인해 양감이 강조된 넓적다리가 현실적으로 보인다.

 

양 어깨에서 흘러내린 통견(通肩)의 법의 옷 주름은 팔과 가슴을 한꺼번에 감싸고 내려와 어색하기만 하다. 평행계단형의 옷 주름은 양 다리에서 각각 타원형의 물결을 이루다가 법의 밑으로 사라진다. 정확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으나 이처럼 다리에서 갈라지는 옷 주름 처리법을 우전왕상식(憂塡王像式) 불상양식이라고 부른다.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영주에 2m 규모로 세워진 석불입상은 신라하대 불교가 지방으로 보급된 결과이다. 새로운 신앙층이 대두함에 따라 불상 조성의 필요성이 생겼으나 석조 제작기술이 아직 미숙했던 지역의 조각으로 주목된다. 균형이 맞지 않는 머리와 신체, 양감이 없이 경직된 상반신, 미숙한 옷 주름 처리가 이를 말해준다. 다리에 새겨진 타원형의 주름은 신라하대의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居昌陽平里石造如來立像, 보물 제377)이나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咸安大山里石造三尊像, 보물 제71), 고려 중기의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牙山坪村里石造藥師如來立像, 보물 제536)과 비교될 만하다.


▲석불입상

 

▲석불입상

 

▲상호

 

▲상호

 

▲상호

 

▲하반신

 

▲하반신

 

▲하반신

 

▲뒷면 의문

 

▲뒷면 의문

 

▲뒷면 의문

 

▲의문

 

▲의문

 

 

 

<2017.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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