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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원의 백미 - 서울 창덕궁 후원 옥류천

蔥叟 2018. 1. 7. 20:28

조선 정원의 백미 - 서울 창덕궁 후원 옥류천

 

옥류천 권역은 창덕궁 후원 북쪽의 깊은 골짜기에 있으며 인조 14년(1636)에 조성하였다. 북악산 동쪽 줄기에서 흐르는 물과 인조가 팠다고 알려진 어정(御井)으로부터 계류가 흐른다. 소요암이라는 널찍한 바위에 U자형 홈을 파고, 샘물을 끌어 올린 다음 작은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게 만들었는데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더불어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을 열었다고 한다. 창덕궁은 북한산에서 이어지는 산자락이 궁궐안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후원을 이루고 있다. 후원의 크기는 약 30만제곱킬로미터(약9만평)로 창덕궁 전체 면적의 60%에 이른다. 옥류천일원은 이러한 창덕궁 후원영역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산계곡을 이용하여 여러 정자가 만들어졌다. 커다란 바위에 홈을 파서 계곡 물이 그 홈을 따라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흐르도록 하였고,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정자를 두어 왕이 자연을 벗삼아 여유를 즐기기도 하였다.

 

옥류천 일원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깊은 계원(溪苑)으로 1636년 인조가 조성한 곳이다. 계류는 북악산의 동편 줄기의 하나인 응봉(應峯)의 산록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내와 어정(御井)을 파서 천수(泉水)를 흐르게 하였다. 계류 가에는 청의정, 소요정, 태극정, 농산정, 취한정을 적절히 배치하고 판석 등으로 간결한 석교를 놓고 어정 옆의 자연 암석인 소요암을 ㄴ자형으로 파서 곡수구와 폭포를 만들어 암벽에 시문을 새기기도 했다. 소요암에 새겨진 ‘玉流川’이란 각자는 인조의 글씨이고 ‘飛流三百尺 遙落九天來 看是白虹起 飜成萬壑雷’의 오언시는 옆에 주기한 ‘庚子二月 癸未題’라 하여 1690년 숙종의 시를 새긴 것이다. 풀이하면 ‘흐르는 물은 삼백척 멀리 날고 흘러 떨어지는 물은 높은 하늘에서 내리며 이를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 온 골짜기에 천둥과 번개를 이룬다’는 뜻이다.

 

태극정은 창덕궁 후원 옥류천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인조 14년(1636)에 만들어져 운영정이라고 불렸으나 후에 태극정으로 명명되었다. 지금은 기둥만 남아 있지만 둥근 기둥에 문설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창호를 달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소요정, 청의정과 함께 상림삼정(上林三亭) 중의 하나다.

 

청의정은 창덕궁 후원 옥류천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궁궐 안의 유일한 초가집이다. 1920년대에 제작된 <동궐도>에는 16채의 초가가 보이지만 현재는 청의정만이 볏짚으로 지붕을 덮고 있다. 하지만 지붕 아래로는 단청을 하여 궁궐 건물로서의 격식을 차렸다. 청의정 앞에는 작은 논을 마련하여 왕이 직접 모를 내고 벼를 베는 친경(親耕)을 하였다. 친경은 과거 임금이 그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하기 위해 창덕궁 내 논에서 직접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면 수확한 볏짚을 이용해 청의정 지붕을 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농사가 순조롭기를 기원하는 선농제, 가뭄과 홍수에 지내는 기우제와 기충제 등 국가적인 농사 의식을 벌이기도 했다. 이는 모두 나라 경제의 기반인 농업에 왕이 솔선수범하며 백성의 생활을 헤아리기 위함이었다. 또한 임금의 애민정신을 되새김으로써 옛 전통을 살리고 올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 있는 행사이다.

 

▲옥류천

 

▲옥류천

 

▲옥류천

 

▲소요정

 

▲소요정

 

▲소요정

 

▲소요정

 

▲소요정

 

▲소요정

 

▲소요정 천장 무늬

 

▲소요정 천장 무늬

 

▲청의정

 

▲청의정

 

▲청의정

 

▲청의정

 

▲청의정 천장 무늬

 

▲청의정 천장 무늬

 

▲태극정과 청의정

 

▲태극정

 

▲태극정

 

 

 

<2017.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