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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향기를 찾아서 - 고령 개실마을 점필재 종택

蔥叟 2017. 9. 26. 09:18

대가야 향기를 찾아서 - 고령 개실마을 점필재 종택

 

점필재 종택은 조선 후기 영남 사림파의 종조인 김종직(金宗直)[1431~1492] 가문의 종가이다. 김종직은 길재(吉再)의 학풍을 계승한 김숙자(金叔滋)의 아들로 1453(단종 1)에 진사가 되고 1459(세조 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1462(세조 8)에 승문원박사로 예문관봉교를 겸하였다. 김종직은 성리학 보급에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훈구파와 대응하여 영남 사림파들이 정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김종직의 학통은 후에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이언적(李彦迪) 등으로 이어졌다.

 

아버지인 김숙자 이후로 계속 밀양에서 거주하고 있던 김종직 가문은 17세기 중반 5세손인 김수휘(金受徽) 대에 와서 고령에 정착하였다. 당시 고령에 세거하고 있던 처부 최필손과 박언임의 전민(田民)을 각기 분급 받음으로써 재지적 기반을 마련하여 고령현 서면 하동방 하가야리로 오게 되었고 이때 점필재 종택이 지어졌다안채는 1800년경, 사랑채는 1812년경에 지어졌으며 1992년 정침 기단과 담장을 보수하였다. 2004년에는 소장 문서와 유물을 보관하고 또한 밀양 예림서원에 보관중인 책판을 가져오기 위해 수장고를 신축하였다.

 

안채, 사랑채, 중사랑채, 고방, 대문간, 사당 및 서책 등을 보관하는 서림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튼 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뒤편에는 사당이 있다. 건물은 남동향이며 토석 담장이 건물을 감싸고 있다. 정침은 정면 8,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뒤쪽에 툇간을 두었다서쪽에서부터 2칸씩 부엌, , 대청, 건넌방이 있으며 전면 좌측에 중사랑채와 우측으로 고방채가 있다. 사랑채는 자형으로 동쪽 편에 2칸의 마루를 두고 왼쪽에 방이 있다. 중사랑은 정면 5,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고방채는 정면 4, 측면 1칸의 우진각지붕이다.

 

현재 점필재 종택에는 유형문화재 제209호로 지정되어 있는 당후일기(當後日記)를 포함하여 고문서 186, 유물 및 현판 8건이 소장되어 있다. 이중 고문서는 15~18세기에 이르는 교지, 소지, 분재기, 호적 문서 등이 있으며 교지의 대부분은 김종직이 받은 것이다분재기는 김종직의 처 문씨의 허여 문기 같은 16~17세기 것이 다수이며, 호구단자(戶口單子)16세기 초에 작성된 1점을 제외하고 18~19세기 것이 대부분이다. 유물로는 호패, 상아홀(象牙笏), 매화연(梅花硯), 성종 하사 유리 주병(成宗下賜琉璃酒甁) 등이 있다.

 

▲점필재 종택

 

▲점필재 종택 대문채

 

▲점필재 종택 사랑채

 

▲점필재 종택 안채

 

▲점필재 종택 안채

 

▲점필재 종택 안채

 

▲점필재 종택 사당

 

▲점필재 종택 사당

 

▲점필재 종택 사당

 

▲점필재 종택 사당

 

 

 

<2017.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