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문화순례◈/항주문화권

의천을 만나다 - 중국 항저우 혜인고려사

蔥叟 2017. 2. 2. 07:15

의천을 만나다 - 중국 항저우 혜인고려사

 

927년에 창건되어 혜인선사(慧因禪寺)라 하였다. 의천은 고려 제11대 문종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11살에 스님이 되어 불경 공부를 많이 했고 30살에 중국 송나라로 밀항해서 14달 동안 불경공부를 했다. 화엄조사인 정원법사(淨源法師)를 찾아 의천이 이 절에 머문 것은 1085년(성종 2)이었는데 반년정도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천은 정원에게서 화엄교학을 배웠다. 이후 천태산에 가서 천태종을 공부하고 고려로 돌아와 고려 천태종을 개창했다고 한다. 의천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배우고 귀국하여 『금장경(金藏經)』 500부를 보내고, 또 중창을 도운 뒤부터 항주 고려사라고 하였다.

 

의천이 도와 재건한 이 절의 건물은 대웅전 · 윤장전 · 천왕전 · 묘응전(妙應殿) · 천불각 · 화엄경각 · 칠조당 · 종루 · 가람당 · 고려사(高麗祠) · 벽선각(碧鮮閣) · 선당(禪堂) 등이 있었다. 화엄경각은 고려국의 칙명에 따라 금자화엄경(金字華嚴經)을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또한 고려사에는 의천의 소상(塑像)을 봉안하였다. 뒷날 이 절은 몇 차례에 걸친 병화로 인하여 참화를 입었다. 1757년에는 청나라의 황제가 친히 고려사에 이르러 법운사(法雲寺)라 사액하였다. 1920년대에 신건식(申健植)이 당우를 수리하고 다시 절 이름을 고려사로 고쳤다.

 

이 절에는 의천의 소상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장씨(張氏)라는 사람이 절 근처 밭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큰 흙 담이 무너져 그 속에 3일 동안 갇혔다. 비몽사몽간에 금관을 쓰고 중국옷을 입은 선인이 와서 그를 구해 주고 사라졌다. 장씨는 이상하게 여겨 황폐한 절터를 방황하다가 의천의 소상이 그 선인과 비슷한 것을 보았다. 이에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10여 칸의 전각을 세우고 소상을 봉안, 그것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2007년 5월 1일에 절강성 항주 서호 근처에 있는 고려사를 다시 지었다. 수교이후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게 되니 이 절을 재건하고 ‘혜인고려사’라고 간판을 달았다. 절강성은 수 천 년 전부터 우리 겨레가 많이 오고 간 곳이고, 한중 문화교류 발자취가 많은 곳이다. 중국은 최근에 고려 사람이 많이 와서 묵었다는 고려관도 영파시에 다시 지었고, 심청이 환생하여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집(심원)을 주산도에 다시 복원했다. 모두 항주 근처 절강성에 있는 곳으로서 우리 땅과 뱃길로 왕래가 잦았던 중국 동해안 지역이다.

 

▲고려사

 

▲고려사

 

▲고려사

 

▲고려사

 

▲고려사

 

▲고려사

 

▲고려사

 

▲고려사

 

▲고려사

 

▲고려사 대웅보전

 

▲고려사 대웅보전

 

▲고려사 대웅보전

 

▲고려사 대웅보전

 

▲고려사 대웅보전

 

▲고려사 대웅보전

 

▲석가모니불과 권속들

 

▲석가모니불

 

 

 

<2017.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