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문화순례◈/항주문화권

항주에 오다 - 중국 항저우 '송성천고정' 공연

蔥叟 2017. 2. 1. 07:20

항주에 오다 - 중국 항저우 '송성천고정' 공연

 

宋城千古情(Sòng chéng qiāngǔ qíng, 송성의 영원한 사랑)

世界三大名秀之一

一生必看的演出

 

송성가무쇼의 제목은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 송성의 영원한 사랑)' 이다. 최첨단의 소리, 빛, 전기 등 과학기술과 무대기법을 통해 양저우고인의 고난, 송나라 황궁의 찬람한, 악가군의 처참함, 양축 백사 허선의 천고의 절창 을 전개 한다. 송성천고정은 세계 3대 쇼 중의 하나라는 평가도 있다 한다.고 송나라와 항주의 역사를 한 공연에 담아 낸다.

 

서막, 양저지광 : 약 8천년에서 5천년 전 신석기 시대에 항주에 살고 있던 '짧은 머리를 하고 몸에 문신을 새긴 옛 사람들의 찬란한 문명을 소개한다. 무대앞쪽의 객석이 필요에 따라서 양쪽으로 움직여 무대를 넓혔다가 좁혔다가 하며, 무대가 앞뒤에서 오르고 가라앉으며 분수가 솟고 비가 퍼붓고 무대에서 말이 달리고, 대포를 쏘고, 성벽이 무너지고, 조명은 환상적이며, 경이로운 기예와 화려한 춤, 입체적 음악과 여섯 일곱 겹으로 설치된 입체 무대 설비 등으로 눈부시게 진행한다.

 

제 1막, 송궁연무(宋宫宴舞) :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 남송시대(1138~1279)의 가장 번성했던 시기의 궁중 연회 모습을 표현하였다. 황제가 황궁에서 생일 연회를 베풀고 각국의 사신들이 축하하고, 아름다운 송궁연무(宋宮宴舞)를 베풀고, 다채로운 서커스 공연 등, 송대의 화려한 문화를 보여준다. 송나라 황제 어전에서 연회가 열리고 있다. 송성이란 이 남송의 도읍 항주를 말한다. 송나라 때 항주는 인구가 100만이나 되는 대도시였고 곳곳마다 노래와 춤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한국의 아리랑과 무용도 나온다. 고려 사절이 남송에 가서 축하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연변 등 조선족 지역의 아리랑을 저들의 문화라고 내세우려는 동북공정의 저의도 있고, 한국관광객에 대한 배려도 있다고 봐야한다. 중국이 우리 아리랑을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시도가 있다. 중국에 있는 소수민족의 문화도 중국문화라는 것이다. 우리와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중 하나이다.

 

제 2막, 금과철마(金戈铁马) ; 1127년 정월, 금나라와 벌어졌던 정강의 난이라는 전쟁을 표현하였다. 남송시대의 영웅 악비장군의 무용담을 그린 것이다. 처음 개봉에 도읍한 북송은 요나라의 압박에 시달려 금나라와 연합을 하여 요를 멸망시켰으나(1125) 금나라와 연합하는 과정에서 송의 허약한 군사력이 노출되자 드디어 금이 송을 침략하여(1127, 정강의 난)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휘종과 흠종 두 황제가 포로로 잡혀갔다. 북송은 멸망하고 고종은 송의 수도를 임안으로 옮기고 남송을 이어갔는데, 그 때 임안이 지금의 항주이다. 화이수이(회수)를 경계로 강남의 남송과 화북의 금이 대치하였다. 그 후 금은 1234년에 몽고에 망하고 남송도 1297년에 역시 몽고(원)에게 망했다.

 

12세기 초 송나라 악비장군은 나라의 운명을 걸고 금나라와 항전하여 위기를 극복했다. “오히려 산을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악가군(악비의 군대)을 무너뜨리기는 정말 힘들다”라는 말이 나왔다. 충신 악비 장군은 진회의 모함으로 죽음을 당했다. 악비 장군의 묘가 소호변에 있고 그 맞은 편에는 진회의 묘가 있다. 진회의 묘 앞에는 침을 뱆어도 좋다는 팻말이 있다고 한다. 말이 무대를 달리고 대포를 쏘고 폭포가 쏟아지는 등 무대 연출이 실감난다.

 

제 3막 (아름다운 서호, 아름다운 전설)은 송나라 때 항주와 소주 일대에서 전승되어온 전설 백사전(白蛇傳)을 극화하였다.

 

제 4막, 매력항주(魅力杭州) ; 오늘 날의 항주의 번영을 표현하였다. 중국은 유구한 역사속에서 역동적이고 흥미진전한 흥망의 역사가 전개되었으므로, 역사 속에서 많은 예술과 문학의 소재가 풍부하고, 오늘날 중국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송성천고정 안내간판

 

▲송성천고정 안내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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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