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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공덕의 상징 - 보성 벌교홍교

蔥叟 2016. 11. 23. 13:20

월천공덕의 상징 - 보성 벌교홍교

 

3간의 홍예를 연결축조하고 석교로서 외벽과 난간에 변모가 적지않게 나타나 있다. 궁륭형으로 된 이 석교는 각처에 있으며 또한 선암사 승선교(昇仙橋)와 함께 구조형식이 아주 뚜렷한 예이다. 궁륭형 교량은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부터 있어온 터이며 국내의 유례로서도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등이 있다. , 각지의 조선시대 석빙고( 등에서도 천정가구에서는 이러한 홍예와 동류의 기법을 보이는 유구들이 있다. 한편 이러한 축조형식은 성문등에서도 흔히 이용되어 온 것이다.

 

이 홍교는 원래 숙종 44(1718)에 당시 낙안현의 주민들에 의해 현지에 떼다리(筏橋, 강과 해류가 교차하는 곳에 원목을 엮어 놓은 다리)를 놓았는데 영조 4(1728)에 전남도 지방에 내린 대홍수로 이 다리가 유실되자 그 이듬해 선암사 주지 護岩和尙若休가 제자인 楚安禪師化主, 習性大師를 공사감독으로 천거 착공하였으며, 이 공사는 6년후인 영조10(1734)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위 내용은 선암사 승선교 근처에 홍교비에 승선교 조성내용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 홍교는 19811984년까지 4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홍예의 밑부분과 석교 외벽의 시멘트를 제거하고 모두 화강암으로 교체하여 원형을 되찾았다.

 

다리는 부채꼴 모양의 돌을 맞추어 둥근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만들고서, 홍예와 그 위에 막돌을 쌓아 석벽을 만든 구조이다. 원래 홍예는 반원형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현재는 아래부분이 갯벌에 묻혀 있어 전체적으로 활 모양을 이루고 있다. 3개의 홍예마다 천장 가운데부분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용 머리 모양의 돌이 돌출되어 있는데, 다리의 아래부분을 향하고 있어 주목된다. 곧 다리의 천장 위에 용두석을 두는 것은 물이나 용과 관련된 민간신앙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용의 코 끝에 풍경을 매달아 은은한 방울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전한다.

 

다리가 놓인 벌교천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썰물 때는 다리의 밑바닥이 거의 드러났지만 밀물 때는 다리 대부분이 물 속에 잠겨버렸다고 한다. 이 다리는 화려하고 정교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풍기는 다리로, 주변 마을의 주민들이 60년마다 한 번씩 다리의 회갑 잔치를 열고 있다고 전한다.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2016.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