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공덕의 상징 - 보성 벌교홍교
3간의 홍예를 연결축조하고 석교로서 외벽과 난간에 변모가 적지않게 나타나 있다. 궁륭형으로 된 이 석교는 각처에 있으며 또한 선암사 승선교(昇仙橋)와 함께 구조형식이 아주 뚜렷한 예이다. 궁륭형 교량은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부터 있어온 터이며 국내의 유례로서도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등이 있다. 또, 각지의 조선시대 석빙고( 등에서도 천정가구에서는 이러한 홍예와 동류의 기법을 보이는 유구들이 있다. 한편 이러한 축조형식은 성문등에서도 흔히 이용되어 온 것이다.
이 홍교는 원래 숙종 44년(1718)에 당시 낙안현의 주민들에 의해 현지에 떼다리(筏橋, 강과 해류가 교차하는 곳에 원목을 엮어 놓은 다리)를 놓았는데 영조 4년(1728년)에 전남도 지방에 내린 대홍수로 이 다리가 유실되자 그 이듬해 선암사 주지 護岩和尙若休가 제자인 楚安禪師를 化主로, 習性大師를 공사감독으로 천거 착공하였으며, 이 공사는 6년후인 영조10년(1734)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위 내용은 선암사 승선교 근처에 홍교비에 승선교 조성내용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 홍교는 1981∼1984년까지 4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홍예의 밑부분과 석교 외벽의 시멘트를 제거하고 모두 화강암으로 교체하여 원형을 되찾았다.
다리는 부채꼴 모양의 돌을 맞추어 둥근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만들고서, 홍예와 그 위에 막돌을 쌓아 석벽을 만든 구조이다. 원래 홍예는 반원형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현재는 아래부분이 갯벌에 묻혀 있어 전체적으로 활 모양을 이루고 있다. 3개의 홍예마다 천장 가운데부분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용 머리 모양의 돌이 돌출되어 있는데, 다리의 아래부분을 향하고 있어 주목된다. 곧 다리의 천장 위에 용두석을 두는 것은 물이나 용과 관련된 민간신앙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용의 코 끝에 풍경을 매달아 은은한 방울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전한다.
다리가 놓인 벌교천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썰물 때는 다리의 밑바닥이 거의 드러났지만 밀물 때는 다리 대부분이 물 속에 잠겨버렸다고 한다. 이 다리는 화려하고 정교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풍기는 다리로, 주변 마을의 주민들이 60년마다 한 번씩 다리의 회갑 잔치를 열고 있다고 전한다.
▲벌교홍교
▲벌교홍교
▲벌교홍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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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홍교
<2016.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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