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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천 가는 길 - 고창 선운사 동불암 마애불

蔥叟 2016. 5. 7. 08:34

도솔 가는 길 - 고창 선운사 동불암 마애불

 

장대한 마애불이 절벽의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일자(一字)로 도드라진 입과 얼굴의 파격적인 미소가 충격적이다. 우뚝한 코, 앞으로 쑥 내민 두툼한 입술,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사나운 눈매가 보는 이의 속내를 단숨에 꿰뚫는 것 같다. 바로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禪雲寺兜率庵磨崖佛)이다. 늘어진 양 귀는 어깨에 닿아 있고 머리와의 경계가 모호한 뾰족한 육계에 이마에는 백호가 박혀있다. 목은 짧고 삼도는 가느다란 선으로 표현했다. 평평한 어깨에 법의는 통견의이고, 입체감 없는 판판한 가슴 아래로 단정한 군의의 띠 매듭이 가로지른다. 양 손은 손가락을 활짝 펴서 배 부위에서 맞댔으며, 도식적으로 크게 표현한 두 발은 양감 없이 선각처리했다. 광배는 보이지 않는다. 흘러내린 옷주름은 대좌의 상대까지 늘어져 있고, 하대에는 형식화된 복련화문이 표현되었다. 불상의 머리 위와 주위로 여러 개의 네모난 구멍들이 보이는데 목조전실의 가구 흔적이다. 신체에 비해 손발이 크고,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없고 육계가 뾰족한 점, 군의의 띠 매듭, 탄력성이 떨어지는 점 등으로 볼 때 고려 때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도솔암마애불은 민중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봉받는 미륵불이다. 따라서 많은 전설과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새기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란 공중누각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불암 마애불’로 불리기도 한다. 1995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마애불 앞 공터를 발굴하며 마애불이 있었던 곳을 동불암(東佛庵)이라고 밝혔다. 

 

전봉준과 더불어 동학의 3대 지도자의 한 사람인 손화중이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게 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선운사도솔암마애석불비기탈취사건(禪雲寺磨崖石佛秘記奪取事件)’이다. 당시는 조선왕조의 봉건적 질서가 해이해지면서 곧 조선이 망할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개벽을 꿈꾸는 민중들의 바람에 부응하여 동학(東學)이라는 새로운 사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당시 이 지역 민초들의 신앙의 중심은 도솔암미륵불이었다. 그런데 불상의 정중앙에 배꼽처럼 보이는 돌출부가 있고, 이곳에 비기가 들어 있으며, 이 비기를 꺼내면 천지가 개벽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날에는 한양이 멸망하고, 거기에 벼락도 함께 들어있어 누구든 손을 대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손화중이 이 비기를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임진년 8월, 무장 대접주 손화중이 교도들을 동원해 청죽 수백 개와 마른 동아줄 수천 발로 부계를 만든 다음 석불의 배꼽을 도끼로 깨부수고 그 속의 비기를 꺼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졌고 손화중의 접(接)에만 수만의 새로운 교도가 몰려드니 이것이 바로 동학농민전쟁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동불암 마애불

 

 

 

<2016.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