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영가문화권

안동 천등산 개목사 대문채

蔥叟 2016. 2. 29. 07:13

안동 천등산 개목사 대문채

 

개목사는 신라 때 의상 대사가 처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젊은 시절 의상이 이 곳 산 정상 부근의 큰 바위 아래에서 수도를 하고 있자니, 어느 날 하늘에서 커다란 등불이 비쳐 99일만에 도를 깨쳤다고 한다. 이에 의상은 지금의 자리에 99칸 절을 짓고 천등사(天燈寺),즉 " 하늘이 불(도)을 밝혀 준 절" 이라고 이름지었다 전해 온다. ​

 

고려시대에는 포은 정몽주 선생이 한 때 이 곳에서 공부하며 보내기도 했는데, 그 당시는 이 곳을 흥국사 개목암이라고 불렀던 듯 하다. 그가 남긴 시에는 흥국사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昔日讀書興國寺     옛날 흥국사에서 공부할 때

時時一夢到靑山     때때로 밤이면 꿈 속에서 청산에 갔네

舊交最憶堂頭老     옛적 친하던 주지스님 생각 간절하니

爲我乘聞一往還     나를 위해 틈내어 한번 다녀 가시구려​

 

조선시대 때 고불 맹사성(1360~1438)이 안동부사로 오게 되었다. 맹사성이 안동부사로 와 보니 이상하게도 안동 지방에 눈병 환자가 많았다. 풍수지리에 밝은 맹사성은 안동 지형을 가만히 살펴보았는데, 안동의 지세를 보니 눈병이 많은 지세였다. 그래서 당시 흥국사라 불리던 절을 개목사(開目寺)라고 이름을 바꾸었는데, 그 후부터는 차츰 눈병 환자가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개목사가 비보용(裨補用)으로 세워진 것임을 암시해 주는 설화로 여겨진다.

 

「눈병없앤 개목사」의 주요 모티프는 ‘눈병 환자가 많은 안동’과 ‘절 이름을 바꾼 맹사성’이다. 유난히 눈병 환자가 많은 안동에 부임한 안동부사 맹사성이 절 이름을 바꾸었더니 눈병 환자가 없어졌다는 전설로, 이리하여 흥국사가 개목사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맹사성의 ‘맹’자와 개목사의 ‘개목’에 주목하여 풍수지리적인 단점은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면적인 의미망을 살펴보면, 당시 천대받던 사찰이 전혀 쓸모없이 것이 아니라 눈병을 낫게 해 줄 정도로 중요한 신앙 형태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대부가 평대문 문간채 구조를 한 개목사 문 안에 들어서니​, 오른편에 넓은 마루가 갖추어져 있다. 평소에는 휴게 장소로 쓰였겠지만, 비가 올 때에는 법당에 채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이 곳에서 법문을 들었을 터이다. 1965년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이 곳을 조사하던 중 사찰 남쪽에서 전탑터를 찾아내기도 하였다.​

 

▲개목사 대문채

 

▲개목사 대문채

 

▲개목사 대문채

 

▲개목사 대문채

 

▲개목사 대문채

 

▲천등산개목사 편액

 

 

 

<2016.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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