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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박제상 순국지 - 일본 대마도 서해수문

蔥叟 2016. 3. 13. 08:04

충신 박제상 순국지 - 일본 대마도 서해수문

 

鉏海水門, Saikai minato

 

鉏海의 水門은 막연히 신라 방면의 바다를 가리키며 구체적으로는 대한해협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대마도 北端의 鰐浦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神功皇后, 攝政) 5년 봄 3월 癸卯 초하루 己酉 신라왕이 汚禮斯伐과 毛麻利叱智,(『三國史記』 권 45, 朴堤上傳에 박제상을 혹은 毛末이라고도 한다고 하였으므로 毛麻利叱智가 곧 박제상을 지칭) 富羅母智 등을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전에 볼모로 와 있던 微叱許智伐旱[ 奈勿王의 아들 未斯欣(또는 美海, 未叱喜)을 가리킨다. 미사흔이 왜에 볼모로 간 시기는 『三國史記』에는 實聖王 원년(402)으로 되어 있고 『三國遺事』에는 奈勿王 36년(390)으로 되어 있다]을 돌아가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이에 許智伐旱을 꾀어 “사신 汚禮斯伐과 毛麻利叱智 등이 나에게 ‘우리 왕이 제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에 연루시켜 처자를 모두 종으로 삼았다’고 말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잠시 본토에 돌아가서 그 사정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 속이게 하였다. 황태후가 곧 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葛城襲津彦을 딸려 보냈다. 함께 對馬에 도착하여 鉏海의 水門에 머물렀다.

 

이 때 신라의 사신 毛麻利叱智 등이 몰래 배와 뱃사공을 나누어 微叱旱岐를 태우고 신라로 도망가게 하였다. 그리고 풀을 묶어 사람 모습을 만들어 微叱許智의 자리에 두고 거짓으로 병든 사람인 체하고 襲津彦에게 “微叱許智가 갑자기 병이 들어서 죽으려고 한다”고 하였다. 襲津彦이 사람을 시켜 병자를 돌보게 했는데, 속인 것을 알고 신라 사신 세 사람을 붙잡아서 우리 속에 집어넣고 불태워 죽였다. 그리고 신라에 나아가 蹈鞴津[부산 다대포]에 이르러 草羅城[梁山지방]을 정벌하고 돌아왔다.[『三國史記』 권 45, 朴堤上傳에 의하면 堤上이 미사흔을 왜에서 탈출시킨 후 木島에 유배되었다가 불태워 죽임을 당하였으며 미사흔은 신라로 돌아오자 6부의 환영을 받았다고 하였다. 實聖王代의 倭兵 침입기사는 同王 4년 4월, 6년 3월에 보이며 7년 2월에도 왜의 침공에 대비한 기사, 14년 8월에 왜인과 風島에서 싸워 이긴 기사 등이 보인다] 이 때 사로잡힌 사람들이 오늘날의 桑原과 佐糜·高宮·忍海 4邑의 漢人 등의 시조이다.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서해수문

 

 

 

<2016.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