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객사문
강릉 객사는 936년(고려 태조 19) 본부객사로 지정되어 임영관(臨瀛館)의 창건을 비롯해 전대청(殿大廳)·중대청(中大廳)·동대청(東大廳)·낭대청(廊大廳)·서헌(西軒)·월랑(月廊)·삼문(三門) 등 모두 83칸 정도의 건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366년(공민왕 15) '임영관'(臨瀛館)이라는 판액(板額)을 공민왕이 친필로 썼다고 하는데 현재 객사문 앞에 걸려 있는 현판(懸板)이라고 전한다. 위에 기록된 일부 전각(殿閣)들은 여러 번 중수를 거치며 보존되어오다가 1929년 강릉공립보통학교 설립으로 인해 헐리고 오늘날 객사문만이 남아 있다.
객사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집 3문(三門)으로서 남향해 있으며 주심포(柱心包) 형식이다. 기단(基壇)은 앞면과 옆면만 단(段)을 두어 쌓았는데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보수(補修)된 것이고, 초석(礎石)은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은 화강석으로서 비교적 둥근 모양이다.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전·후 면의 바깥기둥은 배흘림의 원기둥을, 판문(板門)이 달린 건물 중앙부의 기둥은 민흘림의 4각기둥을 세웠다.
그 옆으로 판문이 달리는 곳에 각각 신방목(信枋木)과 문지방을 받쳐주는 막이돌을 놓고, 그 위에 문을 달기 위한 문선과 판문 등이 있다. 기둥 간격에 사용된 척도(尺度)는 송대(宋代)의 영조척(營造尺)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원기둥의 배흘림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목조건축물 중 가장 뚜렷한 것으로 기둥 중앙부가 가장 굵고 기둥 상부가 가장 가늘어 약 4치[寸]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대들보는 그 단면이 고려시대의 다른 건물과 같이 뚜렷하게 밑이 좁고 위가 넓은 항아리 입면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공포(栱包)는 헛첨차가 있는 주심포 형식이며, 주두(柱頭)와 소로[小累]의 굽에 곡(曲)을 두고 굽 밑에는 굽받침을 두어 전반적으로 첨차(檐遮)의 변형으로 나타난 쇠서[牛舌]의 초기적인 형태를 보인다. 도리(道里) 밑에는 투각(透刻)된 화반(花盤)과 포대공(包臺工)이 있고 지붕은 맞배지붕에 장연(長椽)만 사용한 홑처마집으로서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객사문
▲객사문
▲객사문
▲객사문
▲객사문
▲객사문
▲객사문
▲객사문
▲객사문
▲객사문
▲객사문 기둥
▲객사문 공포
▲객사문 공포
▲객사문 기둥
▲객사문 기둥
▲객사문 기둥
<201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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