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바위 - 경주 남산 탑골 마애조상군
탑골 불무사 뒤쪽에는 높이 9m, 둘레 30m 정도의 거대한 바위가 솟아있다. 바위둘레 사방에는 불보살상을 비롯한 탑과 비천상(飛天像), 승려 등 34점의 조각이 빼곡히 새겨져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연유로 부처바위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바위에 새겨진 것들이 바로 탑골마애조상군이다. 신라 사람들이 그렇게나 열망하던 부처의 세계를 하나의 바위에 압축해 놓은 우리나라에서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이는 사방불신앙의 현장이다.
이 조각의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먼저 강우방은 부조가 얕아서 회화성이 강하며 북면에 있는 쌍탑을 근거로 800년대 이후의 조각으로 편년하였다. 그러나 남면에 서있는 불상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가슴이 풍만하고 허리가 잘록하여 볼륨감 있는 표현을 한 것은 700년대의 조각으로 볼 수 있으며 남면 앞쪽에 있는 탑은 층급이 3개인 것으로 보아 900년대의 조각에 속한다는 것을 근거로 곽동석은 동서남북이 각기 시간적 차이를 두고 연대별로 조성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문명대는 650년을 전후한 통일기에 밀교인 신인종과 결부시켜서 편년을 하였다. 일제시대 오사까 긴따로(大板金太郞)은 이곳에서 「신인사(神印寺)」명문와(名文瓦)를 발견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곳이 신인사라면 부처바위는 신인종에 속한 가람으로 신인종은 삼국통일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쓰던 7세기에 명랑법사에 의해 개조된 불교의 한 종파이다. 즉 명랑법사는 문무왕 때에 나정 남쪽에 금강사를 그리고 낭산 남쪽에 사천왕사를 지어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으로 당나라를 물리쳤는데 이때에 그가 지은 신인사가 바로 이 절이라는 것이다. 방위신앙은 밀교(密敎)인 신인종에서 유행한 것으로 불력으로 국력을 신장시켜 삼국통일의 구심점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부처바위의 寺名과 관련하여 문명대는 이곳에서 발견된 '神印寺'명 기와를 근거로 신인사라고 추정하였다. 하지만 명문기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최근 향토사학자 최민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천은사로 추정하였다.
○王初卽位, 置南山長倉, 長五十步, 廣十五步貯米穀兵器, 是爲右倉, 天恩寺西北山上, 是爲左倉.
(문무)왕이 처음 즉위하였을 때 남산에 장창을 설치하였는데 길이가 50보였으며 넓이가 15보로서, 이 곳에다 미곡과 병기를 저장하였다. 이것이 우창이며, 또 천은사 서북쪽 산위에도 장창이 있으니, 이것은 좌창이라 한다.
<삼국유사 문호왕법민(文虎王法敏) 조>
지금까지 장창을 중심으로 서쪽의 것은 좌창으로, 동쪽의 것을 우창으로 생각하였다. 최민희는 월성에서 바라보았을 때 동쪽의 것이 좌창, 서쪽의 것을 우창으로 본다면 좌창이 천은사의 서북쪽에 있다하였으므로 역으로 생각하면 천은사는 좌창의 동북쪽이 되므로 탑골부처바위는 천은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남산의 서북쪽으로 추정되는 천은사터에서는 서북쪽에 산이 없다.
▲부처바위
▲부처바위
▲부처바위
▲부처바위 북면
▲부처바위 북면
▲부처바위 북면
▲부처바위 북면
▲부처바위 북면
▲부처바위 북면
▲부처바위 남면
▲부처바위 동면
▲부처바위 동면
▲부처바위 동면
▲부처바위 동면
<2014.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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