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천군동 피막골 폐석탑
피막골은 임진왜란 때 안동 권씨가 피난 와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하여 미막 혹은 피막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피막골 폐석탑은 지대석, 기단면석, 1층 탑신석, 1층 옥개석 부재가 흩어져 있다.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진 지대석은 일부분만 남아있다. 기단면석은 한 명의 반 정도만 있지만 우주와 탱주의 일부가 남아있어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남아있는 면석의 크기로 보아 기단면석은 하나의 탱주가 있고, 2중 기단이 아닌 단층기단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기단 상대갑석은 일부분만 남아있는데 위쪽으로 2단의 탑신받침이 새겨져 있다.
사천왕상이 새겨진 1층탑신석은 한 면이 가로 108cm, 세로 110.5cm의 크기인데, 윗면에는 지름 20cm, 깊이 15cm의 원형 사리공이 있다. 사면에 부조로 새겨진 사천왕상은 마멸이 심하다. 북방다문천왕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북방다문천왕은 둥근 두광이 표현되어 있고, 발아래에는 구름이 표현되어 있다. 갑옷을 잘 갖추어 입고 머리에는 투구를 썼다.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 손바닥 위에 보탑을 올려두고 있다.
동방지국천왕은 머리에 투구를 쓰고 왼손에 장검을 오른손에는 보주를 들고 있다. 남방증장천왕과 서방광목천왕은 모두 투구를 쓰고 손에는 장검을 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막골 폐석탑의 사천왕상은 8세기의 사천왕상보다 조각의 깊이가 얕아 평면적으로 보인다. 특히 입체감을 강조하기 보다는 선적인 특징이 강하다. 이러한 모습은 880년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이나 연곡사 동탑의 사천왕상과 비견되는 특징이다.
1층 지붕돌은 1/4정도만 남아 있으며, 옥개석 받침은 4단이다. 현재 남아있는 석탑부재로 추정해보면 상륜부를 제외하고 3층 지붕돌까지의 높이가 대략 4.8m정도되는 석탑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천왕상의 얕은 조각으로 입체감이 사라지고, 갑옷과 투구의 모양, 4등신의 신체표현 등으로 미루어 대략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원원사터 사천왕상에서 시작한 탑부조 사천왕상이 9세기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는지 그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피막골 폐석탑
▲피막골 폐석탑
▲피막골 폐석탑
▲초층탑신석
▲동방지국천왕
▲동방지국천왕
▲남방증장천왕
<201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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