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신성 순례 - 경주 남산신성 장창터 동창
동창은 3개의 창고 중 가장 지형이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장축이 동-서방향으로 정면 17칸(48m), 측면 5칸(15m)의 장방형 건물로 초석은 비교적 정연히 남아 있다. 기단석은 장방형의 화강암으로 잘 다듬었으며, 높이 30㎝ 정도의 단을 쌓았다. 초석은 64×70㎝ 크기의 방형이다. 내진초석의 주간거리는 2.69m이고, 외진초석 주간거리는 3.81m이다. 건물내부의 자연암석에 파놓은 ㄷ자모양의 홈을 파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목재부틀을 놓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로 미루어 보아 통풍이 잘 되도록 한 고상식 구조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좌창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는 서창을 좌창이라고 생각하였다. 남간마을 숭성재에서 일성왕릉(逸聖王陵)으로 가는 반대편 민가 쪽 길로 약 240m 정도 가면 바로 경작된 밭과 함께 과수원에서 '천은(天恩)'이라는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어 이곳이 천은사지로 추정하였다. 현재 일대는 밭과 과수원으로 변해 있으나 초석(礎石), 석탑재 등이 보인다. 또한 이병익 가옥(탑동 877번지) 내에는 계단 지대석(地臺石), 계단 지대우석, 팔각 간주석 등이 있으며 현재 건물의 기단석 내지 계단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기록과는 서로 부합되지 않는다.
○王初卽位置南山長倉 長五十步 廣十五步 貯米穀兵器 是爲右倉 天恩寺西北山上 是爲左倉
왕이 처음 즉위하였을 때 남산에 장창을 설치하였는데 길이가 50보였으며 넓이가 15보로서, 이 곳에다 미곡과 병기를 저장하였다. 이것이 우창이며, 또 천은사 서북쪽 산위에도 장창이 있으니, 이것은 좌창이라 한다.
<삼국유사 문호(무)왕 법민조>
이 기록에 따르면 좌창은 천은사의 서북쪽에 있으므로 천은사는 좌창의 동남쪽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천은사터는 좌창의 서북쪽에 있어 기록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게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삼국유사에 잘못기록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과연 그럴까? 고대사회에서는 국토의 위치를 언급할 때 절대자인 왕을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다시말해서 왕궁을 중심으로 동쪽은 좌측, 서쪽을 우측으로 보았던 것이다. 조선시대까지도 국토의 동쪽인 경상도는 경상좌도, 서쪽인 전라도는 전라우도라 하였다. 따라서 남산신성도 왕궁인 월성에서 보았을 때 동쪽인 동창은 좌창, 서창은 우창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그러면 좌창의 동남족에 절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탑골 부처바위가 동남쪽에 위치하므로 삼국유사의 기록과도 정확히 부합하게 된다. 그러면 현재의 천은사터에서 출토된 '天恩' 명문기와편는 어떻게 되는걸까? 기와편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성질의 유물이므로 다량의 명문와가 출토되지 않는 한 절대성을 지니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동창터
▲동창터
▲동창터
▲초석
▲초석
▲초석
<201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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