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전곡리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주먹도끼(handaxe)는 구석기 시대의 많은 석기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인류 진화에 관해서 그 어느 석기보다도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하나의 석기로써 여러 가지 기능을 하도록 고안되어 있어, 주먹도끼는 마치 현대의 ‘맥가이버 칼’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거의 100만 년 이상 사용된, 구석기 시대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이다.
▲주먹도끼
▲주먹도끼
▲주먹도끼
주먹도끼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로 아프리카, 유럽, 서남아시아 및 인도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일대에서 널리 발견된다. 양면이 대칭을 이룬 타원형이거나 삼각형을 하고 있으며, 단면은 볼록렌즈처럼 두툼하다. 가장자리 전체에 날카로운 날이 마련되어 있고, ‘도끼’라는 명칭과는 달리 끝부분이 뾰족하며, 실제로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 ‘다기능연모’였다. 주된 용도는 대형동물의 도살 및 해체용으로 추정되고 있다. 임진강, 한탄강 유역의 경기도 연천 전곡리, 원당리, 경기도 파주 금파리, 주월리 등과 같은 구석기시대 전기의 유적들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으며, 충북 단양 수양개와 같이 중기의 유적에서도 소량 발견된다.
주먹도끼의 제작자는 인류의 직계 조상인 곧선사람(Homo erectus)이다. 곧선사람 이전까지의 인류 조상들은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60만 년 전쯤에 출현한 곧선사람들은 불을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비로소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과 아시아로까지 삶의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곧선사람의 화석 출토 범위와 주먹도끼가 발견되는 지역의 범위는 대체로 일치한다. ‘곧선사람’이라는 학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완벽하게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자유로워진 그들의 두 손은 더욱 정교하게 진화되었고, 그로 인해 석기 제작 기술도 그 이전의 어떤 인류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났다. 주먹도끼는 이러한 인류의 진화를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도구인 것이다.
주먹도끼는 인간이 만들어 낸 최초의 규격화된 도구다. 대부분의 주먹도끼는 크든 작든 형태상으로 좌우와 앞 뒷면이 대칭을 이루며, 끝부분이 뾰족한 타원형이다. 주먹도끼의 이와 같은 형태적 정형성(定型性)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주먹도끼를 만들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석재의 선택 과정과 2단계의 제작 과정-성형과 잔손질-을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일한 모양의 석기를 반복적으로 복제해 내기 위해서는 만들고자 하는 대상을 미리 상정하고, 이를 머릿속에서 설계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즉 곧선사람은 앞일을 미리 계획하고, 계획에 따라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 수준이 발달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주먹도끼인 것이다.
주먹도끼의 모양은 균형 잡힌 대칭형이다. 주먹도끼의 제작에는 초보자로서는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난이도가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격지를 전면적으로 떼어내 납작하게 만들고, 가장자리를 따라 날카로운 날과 뾰족한 선단부를 형성하는데, 이는 강인한 느낌을 준다.
▲주먹도끼
▲주먹도끼
▲주먹도끼
주먹도끼는 하나의 도구로 찢고, 자르고, 찍고, 땅을 파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고안되었다. 그러나 일부 주먹도끼는 기능 수행을 위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세련되고 정교하게 가공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거의 완벽하게 좌우대칭을 이루며, 마치 갈아낸 듯 고르게 정리되어 있는 주먹도끼는 도구라기보다는 흡사 한 점의 예술품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주먹도끼가 보여주는 평범한 도구 이상의 면모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주먹도끼의 제작에는 두 종류의 망치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먼저 1차 가공은 돌과 같은 단단한 망치로 전체적인 형태를 다듬고, 2차 가공으로 나무나 뼈와 같은 무른 망치로 정교하게 날 부분을 가공하는 것이다. 곧선사람들은 단단한 망치는 짧고 두터운 조각을, 무른 망치는 길고 얇은 조각을 떼어내는데 유효하다는 것을 경험적 지식으로 터득하였으며, 이러한 기초적인 역학적 지식을 석기 제작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먹도끼의 특질은 제작 기술보다는 그 완성된 형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크기가 다른 주먹도끼들이라 할지라도 길이 : 너비의 비율은 거의 일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선사람들이 기하학적 비율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정연하게 좌우를 대칭으로 만든 것과 길이 : 너비의 비율이 보여주는 일정한 기하학적 요소는 인간의 역사에서 최초로 확인되는 예술성의 맹아(萌芽)일뿐만 아니라,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에서 다루어진 기본 원리를 최초로 보여 준 예로 평가되기도 한다.
주먹도끼의 석재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주로 규암이나 응회암, 화강암 등이 사용되었다. 이들 석재는 균질하지 못하여 정교한 가공이 쉽지 않고, 그로 인해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플린트(flint)로 만든 주먹도끼들에 비해 외형상 거칠고 투박한 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곧선사람들이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지질학적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성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적 조각품들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고대 그리이스의 섬세한 대리석제 조각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지만, 그것이 예술성의 수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다.
▲주먹도끼
▲주먹도끼
1940년대,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모비우스(H.L.Movius)는 동아시아지역에는 주먹도끼가 없으며, 그 대신 찍개가 중심을 이루는 석기문화를 갖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의 학설은 동아시아지역이 주먹도끼가 빈번히 발견되는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지역에 비해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열등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에서 상당량의 주먹도끼가 발견되었고, 중국에서도 최근 들어 많은 양의 주먹도끼가 출토됨으로써 모비우스의 학설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201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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