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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을 찾아서 - 남양주 광릉 재실

蔥叟 2013. 1. 24. 08:34

광릉을 찾아서 - 남양주 광릉 재실

 

   광릉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재위 1455∼1468)와 왕비 정희왕후 윤씨(1418~1483)의 무덤이다.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고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세조의 유언에 따라 능 안에 석실을 만들지 않고 회격(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지는 것)으로 처리하였다. 봉분 주위에 둘러 세우던 병풍석도 세우지 않았다.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신상은 난간석에 조각하였다. 능을 간소하게 만든 덕분에 부역 인원도 반으로 줄고 비용도 절감되었다. 조선 왕릉 최초로 같은 산줄기의 서로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의 능을 따로 만들고 두 능의 중간지점에 하나의 정자각을 세웠다. 새로운 방식의 무덤배치와 간소한 형식은 왕릉제도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후세의 무덤형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광릉을 찾아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재실건물이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재각(齋閣)·재궁(齋宮)이라고도 한다. 삼국시대 시조묘나 신궁제도에서 그 기능이 유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재실은 평시에 능참봉이 근무하며,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능역을 관리하며 수호하는 사람들의 근무 장소이다. 이곳의 건물들은 단청을 하지 않았다. 바깥쪽에는 솟을대분, 하인들이 머무는 방, 마굿간, 창고 등으로 구성된 꽤 큰모의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유학이 사회전반의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왕릉은 조성하는 산릉제도에서 그 기능이 정립되었다고 하며, 일반 사대부에서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으로 많은 재실들이 건축되었다고 한다. 재실은 평상시 영(종5품) 또는 참봉(종9품) 등이 능역의 관리를 위해 근무하는 곳이며,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주요 시설은 집무실인 재실 외에 향을 보관하는 안향정,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었으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

 

▲재실

 

▲행랑채

 

▲행랑채

 

▲재실

 

▲재실

 

 

 

<2013.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