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서원 - 영주 소수서원 강학당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숙수사(宿水寺) 터에 세워졌다. 절터에 서원을 조영하였다는 사실은 사원에서 서원으로 옮겨가는 시대적 전환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조선 중종 대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 1495~1554년)은 순흥 출신의 고려시대 유학자인 안향(安珦, 1243~1306년)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1543년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주자(朱子)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본받아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하였다.
▲소수서원 전경
▲강학당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愰, 1501~1507년)의 요청에 의해 명종 5년(1550)에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의 ‘소수서원’이라는 사액(賜額)을 받고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고종 8년(1871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화를 면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안향과 안축(安軸, 1282~1348년), 안보(安輔, 1302~1357년), 주세봉을 배향(配享)하며, 매년 3월과 9월에 향사(享祀)를 지낸다. 회헌(晦軒) 안향(1243~1306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원나라에서 주자(朱子)의 저술을 도입하여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보급하였다. 회헌이라는 호는 그가 흠모하던 주자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한 것이라 한다.
문성공묘 서쪽에는 講學堂(강학당)이 있다. 이곳은 유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던 곳이다. 배흘림기둥을 세운 건물 사방으로 툇마루를 빙 둘러 놓은 前廳後室(전청후실)의 양식이다. 강의실에서 공부하던 유생이 밖으로 나갈 때 감히 스승에게 등을 보이지 않고 뒷걸음을 쳐서 물러나도록 만든 구조인 것이다. 이렇게 서원에는 興學養士(흥학양사), 즉 학교 기능의 강학당 그리고 尊賢祭享(존현제향), 즉 제사 기능의 사당이 있다. 소수서원의 강학당과 사당의 배치는 좀 특이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서원은 前學後廟(전학후묘)라 해서 학교를 앞세우고 사당을 뒤에 두는 중국식을 따르고 있지만, 소수서원은 동쪽에 학교, 서쪽에 사당을 둔 東學西廟(동학서묘)다.
▲강학당
▲강학당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고려말의 대유학자 안향이 젊어서 공부하던 숙수사터에 그의 사묘를 세워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서 백운동 서원이라 이름한 데서 유래한다. 그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명종임금에게 진언하여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사액을 받게 되면서 지방 양반자제들을 가르치는 교육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무너진 주자학을 다시 이어 닦는다'는 의미를 가진 서원의 이름에서도 그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조선의 역사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의 역사라 할 것이다. 훈구파란 고려 말부터 세력을 가졌던 무력집단들이 세조의 계유정란을 거치면서 기득권을 지닌 세력들이다. 여기에 비해 사림은 고려말부터 주자학을 이상으로 하는 선비 집단의 후예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정쟁을 벌였다. 초기에는 항상 훈구파들이 사림을 눌렀다. 4대사화의 본질도 사림과 훈구의 대립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사림도 서원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정치의 주도권을 잡게되니 서원의 향방이 정치의 향방을 좌우하게 되었다. 특히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서원에는 서적과 전답 및 노비를 하사하는 등 경제적 지원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지나치면 좋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서원이 문중 기반 확충과 지배력 강화에 동원되면서 남설되었고, 문중의 지위다툼이나 사회경제적 기반으로 변질되었다. 결국은 대원군 때에 이르러 순수하게 유교의 본령에 충실한 47개의 사액서원을 제외한 모든 서원이 철폐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강학당 마루
▲백운동 편액
일반적으로 서원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서원의 앞부분에는 교육공간이며 뒷부분에 배향공간을 두는 구조이다. 그런데 소수서원은 그와같은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오히려 절집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되는데 아마도 숙수사의 무너진 폐허 속의 초석들을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201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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