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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성혈사 나한전

蔥叟 2012. 7. 2. 03:20

영주 성혈사 나한전

 

   성혈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신라 의상대사가 소백산 기슭에 초암사를 지을 때의 일이다. 매일 서까래가 조금씩 없어져서 이상하게 여긴 스님이 서까래를 찾아 인근 숲을 돌아다니다 한 곳에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스님은 서까래가 쌓여 있던 주변의 풀을 주워 모아서 그 자리에 초막을 지었다. 그 초막이 바로 성혈사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스님이 초암사를 짓고 수행을 하다 협소한 탓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도 전한다. 절 아래 300m 쯤 떨어진 곳에는 성인이 나왔다는 굴이 있는데, 내용 그대로 절 이름을 ‘성혈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한전은 조선 중기에 세워진 사찰 건물로 지형에 따라 건물을 자연스럽게 배치한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곳이다. 1984년 나한전을 보수할 때 발견된 기록에서 조선 명종 8년(1553)에 창건되고 인조 12년(1634)에 다시 보수한 것이 확인되었다. 낮은 기단 위에 있는 앞면 3칸, 옆면 1칸의 작은 건물로 다포계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지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기둥은 배흘림기둥에 가깝게 다듬으면서 벽신을 세우지 않고 문짝을 달았다.

 

  정면 3칸에 설치된 창호는 다양한 꽃무늬 장식으로 꾸몄다. 특히 어간의 것은 십장생을 투각해 놓았는데 연못(蓮池)에 게, 물고기, 개구리, 동자상, 여의주, 학, 연꽃 등을 조각하였는데, 물과 하늘에서 사는 생물들을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사례가 드문 특출한 것으로 뛰어난 조각과 공예기술이 스며있다. 조선중기 이후에는 대체로 불교가 서민층의 의식세계를 포용하게 되었고, 사찰 내의 건물의 구성 및 장식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나한전 앞 마당 좌우에는 석등 2기가 서 있다. 석등 하대석에는 거불이가 조각되어 잇다. 좌측의 석등은 거북이의 모습이 손상이 심하여 윤곽을 알아보기 어려우나 우측의 것은 선명하다. 그 위의 간주석에는 2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용의 비늘은 아주 선명하나 다리는 없고 얼굴이 익살스럽다. 호랑이의 얼굴 같기도 한다.

 

▲나한전

 

▲나한전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문살

 

▲나한전 편액

 

▲석등

 

▲석등

 

▲석등

 

  

 

<2012.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