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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화엄종찰 - 영주 부석사 안양루

蔥叟 2012. 6. 20. 05:17

해동화엄종찰 - 영주 부석사 안양루

 

   부석사 가람구조를 생각하며 이제 안양루를 바라본다. 안양. 극락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이곳을 지나면 이제 극락에 다다름이리라. 길은 안양루 마루 아래로 이어진다. 안양루는 누각이면서 절의 삼문 가운데 마지막 문인 불이문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 불이문은 해탈문이라고도 부르는 문이다. 일체의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므로 오직 이문을 통해서 불교의 진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 안과 밖의 세계가 완전히 별개임을 상징한다.

 

▲안양루와 범종루

 

▲안양루

 

   범종루를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르면 괘불지주를 만나고 그 뒤로 안양루가 보인다. 그런데 안양루는 지금까지 올라온 순례자의 진행방향과는 달리 비틀어져 있다. 부석사 가람은 중심축선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의 형태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그 중심축선이 일직선이 아니고 안양루에 오르면서 약 30도 정도로 꺾여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자연 지형 때문이었을까?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연출하기 위해서일까? 이 중심축선의 분리굴절과 관련하여 많은 의문과 해석이 있다.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으며 우연의 결과라는 해석까지 등장한다. 또한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사각방향으로 중첩되면서 일체를 이루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었다. 어쨌든 이 안양루 축은 이제까지의 남서향 축과는 달리 정남향이다. 이와 같이 방향을 바꿈으로써 숨통이 트여 엄격한 대칭이나 계층이 주는 위압감을 감소시키고 있다.

 

▲안양루

 

▲안양루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한국 고건축의 안대와 관련한 주장은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우리의 고건축은 산맥과 형국의 생김새가 건물 배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각 건물은 고유한 안대(바라보는 산이나 봉우리)를 가진다. 이 안대의 위치와 모양에 따라 건물의 배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부석사에 적용해보면, 안양루 아래까지의 안대와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안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양루 아래 범종각에서 바라보면 소백산맥의 여러 봉우리들이 이어지다가 가장 높은 봉우리인 도솔봉이 범종각의 정면에 와서 멈추게 된다. 즉, 도솔봉이 범종각의 안대인 것이다. 또 안양루에 올라서 바라보면 동쪽의 작은 산줄기를 따라가다 오똑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에서 눈이 머물게 되는데 이 봉우리가 무량수전과 안양루의 안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안양문 편액

 

▲안양루 편액

 

   이러한 현상을 교리적인 차원으로 해석하면 무량수전과 안양루와 안산의 신앙체계는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를 상징하며, 나머지 범종루 축과 도솔봉의 신앙체계는 미래불인 미륵정토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론을 입증해줄 기록이 전하고 있으니 순흥읍지와 교남명승첩(嶠南名勝帖, 영남지방의 명승들을 그려놓은 그림)이 그것이다. 순흥읍지에는 안양루 아래에 법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겸재 정선이 그린 교남명승첩에도 법당의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안양루 대석단 아래, 범종각 뒷편의 빈 공간에 법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남아 있는 괘불대는 법당앞에 있었을 것이며 또 그 앞에는 석등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 법당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수가 없다. 하지만 이 법당이 또 하나의 중심법당이었다면 부석사는 두 개의 중심법당을 가지는 구성이었을 것이다. 즉 아래의 중심법당은 도솔봉을 안대로 하고, 위의 무량수전은 안산을 안대로 하는 구성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아래 중심법당의 이름은 부석사가 화엄종 사찰임을 상기할 때 그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2012.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