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영가문화권

봉화 닭실마을 권충재 종택

蔥叟 2012. 6. 13. 00:07

봉화 닭실마을 권충재 종택

 

   닭실마을은 마을 모양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지세라 '유곡(酉谷)'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금계포란형이란, 수탉과 암탉이 서로 마주보고 사랑을 나누며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을 일컬으며, 닭이 알을 품은 형태는 자손들이 번창하고 재물도 늘게 된다고 한다. 닭실마을은 조선중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경승지로 지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곳으로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숲과 자연경관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는 역사문화의 명승지이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약 500여년 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충재(沖齋) 권벌(1478~1548)선생께서 마을에 입향하면서 이며 이후 지금까지 후손들이 지켜오고 있다. 충재가 닭실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부친이 연로하고 풍병이 있음을 들어 삼척부사를 자청하여 삼척으로 가는 길에 이곳 봉화를 지나게 되았는데 이때 그는 이 마을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이후 충재는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고향에 돌아와 큰 닭이 알을 품고있는 형상의 터 닭실에 자신의 삶의 터전을 열었다. 이때 충재는 안동의 도개촌(안동 북후면 도촌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이 넓게 펼쳐진다. 전형적인 양반가옥왼쪽으로 3칸 서실이 있고 행랑채 맞은편에는 정면7칸, 측면 8칸 구성의 口자형 안채가 있다. 사랑채 앞에는 짚으로 꼬아 만든 여막이 있다. 종손어른의 상중이라는 표시이다. 5대조부터는 땅에 묻는 것이 일반인데 이곳만큼은 위폐를 묻지 말고 모두 사당에 모시고 있다. 그리고 사당의 위치 역시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위치하는 것도 색다른 점이다. 일각문을 들어서면 내삼문을 거쳐 사당체에 이른다. 오른쪽에 재청인 별채가 자리하고 있다.

 

▲권충재 종택 전경

 

▲솟을대문

 

▲솟을대문

 

▲충재종가

 

▲충재종가

 

▲충재종가

 

▲사랑

 

▲사랑

 

▲사당영역

 

▲내삼문

 

▲사당

 

  

 

<2012.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