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중원서원문화권

단양 도담삼봉

蔥叟 2010. 11. 29. 06:13

단양 도담삼봉

   

   단양의 이름난 여덟 명승지인 단양팔경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도담삼봉은 남한강 푸른 물에 수려한 모습의 바위봉우리 세개가 아름다운 자태로 솟아있는 모습인데 일찍이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청유하였다 한다. 또한 도담삼봉의 경치에 반한 퇴계 이황 선생은 그 절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 같이 맑은데 / 석양의 도담봉엔 저녁노을 드리웠네
            신선이 뗏목을 기대고 잘적에 /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지더라

 

도담삼봉

 

도담삼봉

 

   삼봉 중에서 가장 높은 가운데 봉우리는 높이가 약 6m로 장군처럼 늠름하게 서있다 해서 장군봉(남편봉)이라 불린다. 장군봉을 중심으로 왼쪽은 첩봉(딸봉), 오른쪽은 처봉(아들봉)이라 부른다. 이름처럼 첩봉은 교태를 가득 머금고 있는 듯하고 처봉은 얌전하게 돌아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옛 선조들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도담삼봉에는 각각의 이름과 관련해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장군봉과 처봉은 원래 금실이 아주 좋은 부부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장군봉은 첩봉을 얻어 아이를 갖게 됐고, 첩봉은 아이를 가져 불쑥해진 배를 보란듯이 장군봉을 향해 내밀며 뽐을 냈고 이를 시기한 처봉은 이들을 외면하고 등을 돌려 앉았다. 이를 처음부터 지켜보던 하나님이 이들을 노여워해 영원히 움직이지 못하게 벌을 내려 지금의 도담삼봉이 탄생했다고 한다. 실로 도담삼봉의 모습은 살펴볼수록 그 생김새와 전설이 딱 맞아 떨어져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도담삼봉

 

▲장군봉과 첩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란 유명한 명산이었다. 삼봉산 중턱에는 이 고을 향교가 위치했고 산새소리와 함께 절벽 밑으로는 조양강(朝陽江) 맑은 물이 구비쳐 흘렀으니 보는 사람마다 그 아름다움을 감탄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있은지 13년 후 을사년(乙巳年)에 큰 홍수가나 하루밤 사이에 이 삼봉산은 홍수에 밀려 떠내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삼봉산을 잃어버린 이 마을 사람들은 홍수가 줄어들자 유실된 삼봉산을 찾고자 의논한 끝에 기골이 장대한 장정 다섯 사람을 뽑아 강물을 따라 산을 찾으러 떠났다. 그러나 보름이 넘도록 고생을 무릎 쓰고 헤매였으나 삼봉산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어느 날 숲속에서 밤을 지새고 아침해가 떠오를 때였다. 한 장정이 갑자기 산을 찾았다고 소리쳐 일행이 눈을 모아 바라보니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곳에 세 봉우리의 산이 있지 않은가? 모두가 기뻐서 숨가쁘게 달려가 보니 도담(충북 단양군 매포면)강 물 가운데 떠내려오다 자리잡힌 봉우리들이 흙은 홍수에 씻겨 떠내려가 버리고 바위만 남았으니 산세로 미루어 보아 삼봉산이 틀림없었다.

 

도담삼봉

 

▲장군봉과 처

 

   잃어버린 산을 찾은 이 마을 사람들은 그로부터 수 십년 동안 해마다 가을이면 단양군 매포면 도담에 가 삼봉산의 산세를 꼬박꼬박 받아왔다. 그러던 어느해 예년대로 산세를 받으러 갔는데 마침 산세를 줄 돈 준비가 안돼서 "돈내라" "좀 기다려라"하며 서로간의 언쟁이 벌어져 떠들썩한 판인데 그때 겨우 대여섯살 남짓한 동자가 앞에 나서며 "산세를 들어드릴 수 없으니 당장이라도 삼봉산을 다시 가져 가십시요."라고 거부하니 돈 받으러 간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답변할 말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신화같은 이야기가 전하여지고 있다.

 

 

 

<201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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