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내포문화권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蔥叟 2010. 7. 27. 06:09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서산마애삼존불과 대규모의 절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보원사지가 있는 용현계곡은 가야산 석문봉을 정점으로 하고 한쪽은 옥양봉 한쪽은 일락산을 사이에 두고 두봉우리틈새에 형성되고 북쪽으로 열린 길다란 계곡이다. 석장승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산굽이가 된 각도를 이루며 굽어돌 즈음 계곡은 좁아지고 개울건너쪽은 단애를 이루고 있거나 급경사 산록을 보이고 있는 지형이 된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길은 개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가 오른쪽 바위벼랑아래로 난 돌계단을 올라간다. 조그마한 절집이 나오고 절앞마당에서 왼쪽 단애아래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맞은 편에 작은 암봉이 꼭대기에 소나무를 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지를 단애아래로 펼치고 있는 이 키작은 노송과 바위는 그림같다. 암봉은 절리가 불균형을 이룬 커다란 바위로 되어있고 개울쪽은 단애를 이루고 있는데 이 작은 암봉과 앞산 사이에 작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마애삼존불 전경

  

마애삼존불

    

마애삼존불

 

   마애불은 앞산 능선을 향하여 조금 돌출한 면석에 새겨졌다. 돌출한 면석 위로는 모자챙처럼 앞으로 불거진 바위가 있어서 풍우에 노출된 석불을 그래도 얼마쯤은 막아주는 역할을 해주었기에 천년전의 미소가 아직 우리곁에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석축옆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중앙에 석가여래입상 왼쪽에 반가사유상 오른쪽에는 보살상이 조작되어 있으며 본존불인 여래입상의 높이는 본존상인 여래입상(높이 2.8m)과 보살입상(1.7m) 반가사유보살상(1.6m)등 3개의 불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존(本尊)의 당당한 모습과 연화무늬를  새긴 보주형(寶珠形)의 두광(頭光)은 매우 특이하다. 네모진 얼굴은 크게 뜬 두  눈과 넓은 코, 양끝이 살짝 올라간 입가에서 풍기는  미소가 시선을 끈다.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을 맺었고,  법의는 두 어깨를 감싸며 길게  내려와 발 위에까지 닿았으며, 상의(裳衣)는 허리띠의 매듭을  나타내었고, 그 밑 좌우에서는 동심원의 옷주름을 새겨 놓았다. 또 발 밑에는  연꽃이 장식되어서 연화좌(蓮花座)를 뜻하고 있다.  

 

마애삼존불

  

마애삼존불

   

마애삼존불

 

   좌우의 보살상은  왼쪽에 반가상이, 오른쪽에 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높은 보관(寶冠)을 쓴 긴 얼굴에는 은행(銀杏)을 닮은 두 눈과 미소 있는 입가의 표정이 어울려 온화한 가운데도 근엄한 인상을 보이는데, 이는 본존과 같은 분위기이다. 천의(天衣)는 양 어깨로부터 하체에 이르기까지 U자형 주름을 새겼다. 그 조법(彫法)은 대체로 얇게 새겼는데, 머리 부분의 고육조(高肉彫)와는 대조가 된다. 역시 머리에는 광배를, 발 밑에는 연화좌를 갖추었다.

 
   왼쪽 반가상은 이 서산마애삼존불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특이한 예로서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반가상도 역시 광배와 연화좌를 지니고 있다. 꽃을 장식한 보관(寶冠)은 높은 편이며, 둥근  상호(相好)는 역시 미소가 잘 표현되었다. 왼손을 들어  두 손가락으로 살포시 턱을 받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반가(半跏)한 발목을 잡고  있다. 상반신은 나체이며, 허리  밑으로 옷무늬가 새겨져 대좌(臺座) 전체를 덮고 있다. 오른발은 내려 연화좌(蓮花座)를  밟고 있다. 두  보살이 양식상 이렇게 다르지만 크기는 1.7m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마애삼존불

  

마애삼존불

  

마애삼존불

   

   본존 여래와 두 협시보살은 각기 석가여래, 관음과 미륵 보살로 추정되기도 하며 석가여래,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의 수기삼존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석가여래, 관음과 미륵보살로 보는 입장은 당시의 신앙형태가 현세에서 도와주는 관음과 내세에서 도와주는 미륵으로 볼 때 믿음이 든든하고 간다라 삼존불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 여래 좌우에 관음과 미륵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수기 삼존상으로 보는 견해는 과거불인 연등불이 현세불인 석가모니에게 수기를 주었고 석가모니는 미래불인 미륵보살에게 수기를 주었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도상화한 것이 서산마애불로 보는 것이다. 즉 우협시보살은 과거불인 연등불의 보살형인 제화갈라보살이고 좌협시보살은 미래불인 미륵보살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면 관음보살, 미륵보살, 그리고 제화갈라보살에 대하여 알아보자. 

 

마애삼존불

 

▲본존

  

   관음보살은 가장 폭넓고 깊고 친숙하게 신봉되는 유명한 보살이다. 대승불교가 번성한 지역이면 어디에나 관음보살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이 보살은 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광세음(光世音)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그러한 명칭 자체가 그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관음보살 또는 관세음보살이라 부르는 쪽이 훨씬 더 부드럽고 친근한 감이 있어 그렇게들 부르고 있다. 이 보살은 이 세상의 생명체, 즉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명호을 부르면, 곧바로 그 소리를 보고서 그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중생의 소리를 보는 것이 이 보살이 맡은 큰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소리를 본다는 말이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여래의 눈. 귀. 코. 혀. 몸이라는 다섯 감각기관이 서로 그 대상을 바꾸어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여래는 눈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귀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여래의 초능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련된 인격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명의는 손으로 만져만 보아도 병을 알고, 탁월한 연주가는 악보를 보기만 하여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낀다고 하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을 구제하는 탁월한 능력을 관음이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과 같은 분은 중생의 눈을 보기만 하여도 그 호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며, 관음이라는 말이 보다 심오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이상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 관음보살의 뛰어난 구제력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으로는 손과 눈이 천개나 되는 천수천안(天手天眼)관음, 중생의 고통을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얼굴이 11개나 있는 자비의 상징인 십일면관음 등이 있다.  

 

▲본존

 

▲본존

  

▲본존

  

   미륵보살은 메시아로서 널리 알려진 미래불(未來佛)이 곧 미륵불(Maitreya)이다.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고도 한다. 미륵보살에 관한 경전으로는 미륵3부경(彌勒三部經)으로 일컬어지는 〈미륵상생경 彌勒上生經〉·〈미륵하생경 彌勒下生經〉· <미륵성불경 彌勒成佛經> 등이 있다. 이에 따르면 미륵보살은 이름이 아일다(阿逸多)라 하는데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었으나 석가모니보다 먼저 죽었으며, 현재는 보살의 몸으로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머무르면서 천상의 사람들에게 설법하고 있다. 또한 설화에 따르면 보살은 초발심 때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자씨보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일찍이 석가모니로부터 수기(受記)를 받았는데, 도솔천에서 4,000세(인간세상에서는 56억 7,000만 년)의 수명이 다한 후에 인간세상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여, 3번에 걸친 설법으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할 것이라 했다. 이처럼 미래에 석가모니를 대신해 부처가 되어 설법한다는 의미에서 보처보살(補處菩薩)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부처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미륵불·미륵여래라고도 한다. 이로 인하여 미륵보살과 미륵불을 나타내는 2가지 조상(彫像)이 있게 되었다. 사회가 불안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지상 낙원의 세계를 꿈꾸게 된다. 이러한 혁명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알맞은 복음적인 부처님이 바로 미륵불이다. 후삼국 시대의 궁예가 스스로를 미륵이라 자칭한 것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1959년 홍사준 선생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당시의 일화가 재미있다. 보원사 터를 조사하러 올 때마다 주민들에게 산에 부처님이나 탑을 본 적이 없는 가를 묻곤 했다고 한다.  어느날 골짜기에서 만난 한 노인에게 묻자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마누라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 장돌을 쥐고 집어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본존

 

▲본존

  

▲본존

  

   연등불은 불교에서 말하는 과거7불(過去七佛)의 하나로 그 보살형을 제화갈라보살이라 한다. 보광불(普光佛)·정광불(錠光佛)이라고도 한다. 과거세에 수행하는 보살이던 석가모니에게 성도(成道)하리라는 수기(授記)를 준 부처이다. 〈수행본기경 修行本起經〉에 따르면 과거세에 제화위국(提和衛國)에 등성(燈盛)이라고 하는 성스러운 임금이 있었다. 그는 임종 때 태자 정광(錠光)에게 나라를 맡겼다. 그러나 태자는 세상이 무상함을 알고서 동생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출가하여 사문(沙門)이 되었다.

 

   그는 여러 해의 수행 뒤에 성불하여 부처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연등불이다. 그때에 유동(儒童)이라는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부처가 세상에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서 직접 만나 가르침 듣기를 원했으며, 마침내 편력하며 교화하는 연등불을 만나게 되자 연꽃으로 부처에게 공양하고, 머리털을 진흙에 깔아 부처가 밟도록 했다. 연등불은 그에게 후세에 성도하여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주었는데, 이 수행자 유동이 바로 석가모니불이다.

 

▲본존

  

▲본존

 

▲좌협시보살

 

   이 삼존불의 가장 큰 특징은 특유의 미소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입술을 드러내면서 눈을 크게 뜨고 뺨을 한껏 부풀린 모습의 여래입상은 백제인의 전형적인 미소를 보여 준다.그것은 신라의 속깊은 미소와는 분명하게 다르다.그 미소속에는 침묵이 있고 침묵속에 사랑과 자비가 깃들어있다는 느낌마저 준다.이 불상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미소짓는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불자들사이에선 자신과 똑같은 심정으로 얘기해주는 불상으로 통한다. 전체적으로 묵직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으로 신체의 굴곡을 부드럽게 처리한 솜씨도 일품이다. 부처의 옷이 무겁게 보이지만 활달하면서 유려한 주름이 새겨진 것도 독특하다. 반가사유보살상과 보살입상에도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이 잘 나타나 있다. 오른손을 턱에 대고 오른다리를 왼다리 무릎위에 걸친 반가보살상은 청순한 웃음을 띄고 있어 인상적이다. 보살입상은 상반신을 벌거벗은채 목걸이만 걸치고 있는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좌협시보살

  

▲우협시보살

  

▲우협시보살

 

 

 

<201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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