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화전리 사면석불
1983년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돌기둥 4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四面佛)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사방불로서 서산마애삼존불이나 태안마애삼존불과 비교할 수 있어 백제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작품이다. 사면불을 일명 '사방불'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사방정토를 관장하는 여래에 대한 신앙으로 일반적으로는 약사불·아미타불·석가불·미륵불을 뜻한다. 사방불 신앙은 법화경이나, 아미타경, 또는 금광명경에 근거하여 조성하였는데 이들 경전에 의하면 왕사성의 신상보살이 부처님의 수명이 80세인 것을 의심하자 사방에서 네 부처가 출현하여 부처님의 수명이 영원함을 설하는 내용이 있다.
▲사면석불 보호각
▲사면석불 남면 여래좌상
남면에는 본존불로 여겨지는 여래좌상이 있고, 나머지 면에는 여래입상이 각각 1구씩 새겨져 있다. 남면 여래좌상은 머리를 잃었고, 따로 끼울 수 있도록 되어 있던 것으로 여겨지는 손은 모두 없어졌지만 원래는 시무외여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무외여원인은 선정인 다음에 유행했던 수인으로 통인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석가여래 뿐 아니라 아미타불이나 미륵불에도 같이 표현되던 수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배는 둥근 연화문광배 주위로 불꽃무늬가 물결처럼 새겨진 거신광배이다.
▲남면 여래좌상 광배
▲사면석불 동면 여래입상
양 어깨에 옷을 걸친 통견으로 옷주름이 매우 깊으며 어깨부분은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원형 수법으로 조각하였다.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친 대의 아래에 다시 옷이 있는 편삼(偏衫)을 입었다. 벌어진 가슴에는 Y형으로 표현된 내의와 둥근고리 모양의 띠매듭이 보인다. 이 띠매듭은 5세기 말에 중국에서 불상의 옷 표현 방식이 인도식에서 중국식으로 바뀌면서 중국황제가 입던 곤룡포의 옷고름을 불상의 옷에 표현한 것인데, 우리나라 불상에서는 6세기 말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겉옷은 오른족 어개에서 등을 거쳐 왼쪽 어깨를 덮는 현태로 옷주름이 매우 깊고 가슴아래에서 U자형으로 겹쳐 있다. 대의의 아랫자락은 결가부좌한 다리를 덮은 상현좌(裳懸座)를 이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파손이 심하여 주름의 형태를 알기 어렵고 단지 끝단이 Ω형인 수직 주름과 둥근 옷주름으로 반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불신(佛身)이 길쭉하고 볼륨감이 없는 편이며, 대의의 옷주름선이 매우 깊고 날카로운 평행선으로 되어 있어 다른 백제 불상들에 비해 강건한 인상을 준다.
▲사면석불 북면 여래입상
▲사면석불 서면 여래입상
3면의 불입상은 거의 같은 모습인데, 발견 당시 땅 위에 노출되어 있던 서면을 제외하고는 머리와 양손을 잃었을 뿐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백제의 불입상에서 흔히 보이는 것처럼 장신의 체구에 대의가 가슴 앞에서 많이 벌어지고, 끝자락이 왼쪽 어깨 뒤로 넘겨져 있다. 대의 사이로 Y형의 내의와 둥근 띠매듭이 보인다. 배 아래로 늘어진 옷주름이 두터운 층단형으로 표현되었다든가 대좌 위에까지 늘어진 치마가 좌우로 강하게 뻗쳐 있는 특징들은 7세기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고식적 요소이다. 백제의 불입상 가운데 양식적으로 가장 비교되는 예는 부여가탑리사지출토금동불입상이며, 이후 태안과 서산의 마애불입상들로 진전된 듯하다. 따라서 이 사면석불의 제작시기는 태안 마애삼존불보다는 다소 앞선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사면석불 앞 석탑부재(?)
<201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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