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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성산 패총ㆍ야철지

蔥叟 2010. 3. 18. 08:40

창원 성산 패총ㆍ야철지

       

   패총은 선사시대에 인류가 조개를 먹고 버린 껍데기와 생활쓰레기가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조개더미 유적이라고도 하는데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창원평야의 중심부에 있는 낮은 구릉에 있고, 구릉의 꼭대기는 평평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비탈진 곳에 조개더미들이 쌓여있는데 A지구, B지구, C지구라 부른다. 쌓임층은 가장 위에 겉흙층이 있고, 그 아래에 조가비층이 있으며, 바닥에는 부식토층이 깔려 있다.  

 

▲패총ㆍ야철지 전경

 

▲패총

 

   성산삼한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렸던 조개껍질들이 층을 이루며 산처럼 쌓인 유적이다. 이 조개껍질 층 속에는 쓰고 버렸던 여러가지 도구들도 포함되어 있고, 조개껍질 층의 아래에서는 철기를 만들던 야철지도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의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발굴한 결과 A지구의 겉흙층에서는 신라 토기와 근대 도자기들이 나왔고, 조가비층의 윗부분에서는 중국 한나라 때 처음으로 만든 오수전이라는 화폐와 토기가 나왔으며, 아랫부분에서는 민무늬토기(무문토기)와 간석기(마제석기)가 나왔다. B지구에서는 적갈색 연질토기, 회청색 경질토기 등과 철기가 나왔고, C지구에서는 민무늬토기와 반달돌칼, 돌도끼, 와질토기 등이 나왔다.

 

   구릉 꼭대기에는 흙으로 쌓은 성의 일부가 남아 있었으나 성벽에서 수습된 토기는 이 성이 조개더미 유적과 관계가 적은 신라 때의 것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조개더미의 일부가 신라 때까지 계속 쌓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유적에서 나온 오수전은 유적의 처음 쌓인 시기를 알려주는 자료로서 기원전·후 시기부터 유적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라토기의 형식을 보면 A·D 4세기 무렵까지 이어지며, 성벽에서 나온 중국 당나라 화폐인 개원통보의 연대를 통해서 A·D 5세기 무렵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유적임을 알 수 있다.

 

▲패총

  

▲패총

 

   성산 조개더미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오랜 기간동안 창원지역의 중심지이었음을 보여주며, 창원 분지내에 있는 내동 조개더미, 가음정동 조개더미 등의 유적과 함께 당시의 생활유적으로 중요하다. 1974년 창원공단 조성 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국내 최초로 철생산 관련 유구가 발견되어 사적 제240호로 지정되었다. 성산패총에 대한 긴급조사는 1991년 태풍의 영향으로 유적 보호구역내 절개지 옹벽과 철책 일부가 유실되면서 패각층(貝殼層)과 성벽 일부가 훼손되어 안전복구공사에 필요한 사전조사로서 실시되었다.

 

   패총은 해발 73.5m의 당산(堂山)에서 길게 내려온 능선의 말단구릉에 위치한다. 성산패총의 주변으로는 가음정동패총, 내동패총 등 고대의 생활유적들과 외동지석묘, 가음정동지석묘 등 고분군 등이 분포하고 있어 생활유적과 고분유적이 서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패총은 구릉의 네 면에 각 1~2개소씩 고르게 형성되어 있고, 구릉의 정상부에는 자연지형을 이용한 삼국시대의 석성(石城)이 잔존한다.

 

   긴급조사지역은 북구 패각층 유실지역과 서남구 성벽 일부였다. 조사결과 모두 12개의 퇴적층이 확인되었는데, XII~VII층에서는 무문토기(無文土器)와 마제석기(磨製石器)가 출토되었고, VI~II층에서는 무문토기, 연질토기(軟質土器), 경질토기(硬質土器)가 함께 확인되었다. 무문토기 기종으로는 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 호형토기(壺形土器)가 주종을 이루며, 이 밖에 공열토기(孔列土器)도 출토되었다. 석기로는 반월형석도(半月形石刀) 및 원형유공석기(圓形有孔石器), 석겸(石鎌), 공이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형성은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에 걸쳐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패총

  

▲야철지

 

   철 소재를 녹이고 두드려 각종 철기를 만들었던 야철지는 우리나라 남부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3세기 경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에는 남해안 지역에서 대량의 철이 생산되어 낙랑, 데방과 일본열도의 왜까지 수출되었다고 전한다. 성산패총의 야철지는 이러한 역사의 한부분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성장한 창원시의 역사적 근원이 되고 있다. 성산패총의 야철지는 유물 발굴 과정에서 2개소가 발견되었으나 현재 옛모습대로 복원하여 보존관하고 있는 것은 서남구 패총에서 발견된  야철지이다.

 

   이 야철지는 그 형태가 평면형으로 시골의 대장간에서 쇠를 녹이던 유구와 흡사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그 층위가 무문토기층과 김해토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 즉 초기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성주사가 있는 불모산에서 초기철기시대에 철을 생산했다는 기록과 삼한시대 변한 땅에서 철을 생산, 일본에 수출했다는 역사적 기록과 일맥상통하고 있어 사적 기록 고증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야철지 주변에 우리나라 산업 근대화의 상징인 창원기계공업단지가 건설된 것은 결코 우여느이 일치가 아닌 역사적 당위성에 기인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10.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