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 산책 - 경주 서백당
서백당(書百堂)은 월성손씨 종택으로 양민공 손소가 지은 것이다. 그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과 그의 왼손이자 동방오현 중 한 사람인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곳으로 송첨이라고도 불리운다. 一자형의 대문채 안에 ㅁ자형의 안채가 있는데 대청 6칸, 안방 3칸, 부엌 2칸이다. 아래채의 중심칸이 안대문이고 그 왼쪽은 2칸마루 고방이며, 오른쪽은 큰사랑방과 사랑대청이다. 높은 돌기단 위에 있는 사랑대청은 마루 둘레에 난간을 돌린 누마루이다. 사랑대청 옆 정원쪽으로 짤막한 상징적 담장이 있으며, 정원 윗쪽에는 사당이 있다. 조선초기 양반집의 일반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종가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춘 큰 가옥이며 사랑 마당에 있는 향나무는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서백당 입구
▲서백당
▲서백당
사랑채에 걸려있는 이름은 '書百堂'과 '松簷'이다. 우재 손중돈이 관가정으로 분가하면서 400여년간 대종가의 지위는 관가정으로 옮겨갔다가 20세기에 들어와 다시 서백당으로 종가를 옮겼다. '서백당 '이란 편액은 원래 관가정 사랑채에 걸려있던 것으로, 종손이 문중에 어렵고 복잡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참고 이겨내기 위해 참을 忍자를 백번이나 써서 종손으로서 인내를 기르라는 고통의 가르침이었다. '소나무 처마'라는 정취어린 이름의 '송첨'은 사랑 앞마당의 크고 멋진 노향나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양민공 손소의 호인 松齋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큰사랑 남쪽의 '息窩'는 15세 손응구의 호이다. 풍수에서 息은 지맥의 흘러감을 窩는 지기가 모여들어 혈이 맺힌 둥지와 같은 곳을 뜻한다.
▲서백당
▲서백당
▲서백당
관가정은 손소가 양동 처가마을에 정착하면서 지은 집으로 전한다. 살림집의 모습이 온전히 남아있기로는 서백당이 가장 오래된 주택이다. 물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살림집은 1330년대 최영장군의 고택으로 전하는 아산의 맹씨행단이다. 하지만 사랑채와 부속채들이 없어지고 한채도 일부만 남아있는 불구주택이다. 양동마을 안골 깊숙한 곳, 높은 산등성이에 자리잡아 입지부터 대종가다운 위엄이 가득하다. 그러나 마을 아래서는 담장만 살짝 보일 뿐, 대문 팡의 큰 고목나무가 랜드마크역할을 한다. 집안에 들어서면 대종가 치고는 매우 소박한 느낌을 받는다. 시기적으로만 오래된 집이 아니라, 단정하게 절제된 형태와 간결한 구성, 일절 장식이 배제된 겸허함 등으로 양반 살림집의 진수를 보여주는 원형적인 집이다.
▲서백당
▲서백당 사랑마루
▲서백당, 송첨
풍수적 설화가 전한다. 이 터는 '3명의 큰 인물이 태어날 곳(三賢先生之地)'으로 점지됐다. 손소의 아들인 손중돈은 물론, 외손인 이언적도 이 집에서 태어났다. 이언적이 대단한 인물이 된 후, 손시 집안에서는 '남의 가문만 좋은 일 시켰다'고 후회가 막심했다. 그래서 시집간 딸들이 해산하러 오면 다른 일가집으로 보내는 유습이 지켜지고 있다.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지막 한 인물은 꼭 손씨 가문의 피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손인 이씨 가문에게 수적인 열세에 몰리면서도 손씨들이 떠나지 않았단 이유는 바로 마지막으로 위인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성주봉
▲서백당 안채
▲서백당 사랑채
ㅁ자 형의 살림채와 그 앞의 긴 행랑채, 그리고 동쪽의 사당채가 전부로, 평면만 본다면 간략한 구성이다. 살림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복합돼 있다. 살림채 뒤쪽 넓은 후원에는 사당의 제사를 위한 제청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문 앞에 흙담으로 쌓은 우아한 화장실과 안채 서쪽의 방아실채는 벽과 기둥을 붕리하고, 지붕과 벽 사이를 띄움으로써 매우 건축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사랑대청은 ㅁ자형 살림채의 남서쪽 모서리에 놓이고, 두 개의 사랑방이 대각선으로 놓였다. 방들의 위치가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대종가가 가져야 할 위엄이 약화된다. 그러나 역시 사랑 대청에 앉아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마을의 안산인 성주봉이 집의 남서쪽에 있기 때문에 남서 모퉁이를 개방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채와 안채
▲중문
▲서백당(書百堂)
이 집의 주인공은 동쪽에 있는 사당이다. 대종가는 사당에 제사지내기 위해 존재하는 의례용 주택이기 때문이다. 종가를 답사할 때는 먼저 사당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사당에 이르는 통로를 어떻게 공간화했는지, 그리고 다른 생활부분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종가의 건축가들이 가장 고심한 핵심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어느 종가도 서백당을 따라올 수 없다.
▲송첨
▲식와(息窩)
▲행랑채
대문을 들어서기 전 대문간을 통해서 보이는 장면에서 이 집의 모든 의도와 성격을 알 수 있다. 대문간에서 보면 화면이 4개로 분할된다. 왼쪽으로는 사랑채 기단과 사랑대청의 간결한 난간들이, 오른쪽으로는 몇 개로 접혀들어간 마당의 기단들과 짧게 끊어진 내담이 모두 재료와 질감이 서로 다르다. 또한 서로 다른 크기로 분할되어 역동감이 강하다. 왼쪽 사랑채 장면이 형태와 물체로 이루어졌다면, 오른쪽 장면들은 계속 접혀져 들어가는 공간의 흐름이 주제다.
▲행랑채
▲향나무
▲사당 내삼문
대문간에서 사당은 보이지 않는다. 사당은 뒤편 멀이 높은 석축 위에 올려져 잇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대문을 들어서면 모두 오른족 사당 쪽으로 향하게 된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넓게 편펴진 입체적인 마당이 나타나고 잘 생긴 향나무가 나타나고 그 뒤 계단식 정원 뒤로 사당문이 나타난다. 사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암시와 유도 만으로 이 집의 중심이 그 안에 있으리라는 걸 느끼게 한다. 보이지 않는 핵심, 의식하지 못할 교묘한 유도법, 고도로 절제된 공간요소들, 원형적인 구조체의 구성과 함께 서백당이 이루어낸 고전적인 방법들이다.
▲방아실채
<2009.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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