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릉 가는 길 - 경주 능지탑 십이지신상
능지탑(陵只塔)이라 불리는 이 유적은 외형은 구정동 방형분과 비슷하지만 봉분이 없고 2층탑형식으로 조영된 유구이다.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1차 조사가 이루어졌고, 1960년대 말까지 이곳에는 돌무더기만이 뒹굴고 있었다. 1969년 신라삼산오악조사단에 의하여 발굴조사를 하였다. 소조불 4분이 동서남북 사방에 모셔져 있었으며 바닥이 검게 탄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과 관련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문헌 기록에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다. 다만 문무왕 사후에 고문외정(庫門外庭)에서 화장하였는데 고문(庫門)이란 중국의 한화대전에 나오는 말로 제후가 황제를 만나러 갈 때 통과하는 문을 말한다. 물론 신라에서는 관념상의 문을 설정하고 통과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문무왕을 화장한 후에 재를 중요시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탑이라는 추정을 하였다. 그러나 이곳이 고문이라는 증거도 없으며 십이지신상의 조각 수법도 7세기말보다 훨씬 뒤의 조각으로 보이기 때문에 뒷날에 문무왕을 기념할 만한 사건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성은 없었을 것으로 보이며 다만 헌덕왕 때 이차돈의 비와 아도화상비를 세우는 등 현창 사업을 많이 했던 점으로 미루어 능지 또는 능시 마을의 기록에 적용시켜 능지탑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하층의 각면은 한변 약 23.3m, 높이 약 1.9m로서 각면에 십이지신상을 3구씩 배치하였다. 하지만 동쪽의 호랑이상, 용상과 남쪽의 뱀상은 없어졌다. 남아있는 나머지 십이지신상 부조도 평복과 무복, 그리고 조각 기법 및 크기에서 차이를 보인다. 십이지신상 중에서 쥐상은 낮은 귀와 함께 이빨을 나타내었고 왼손은 칼을 쥐었으며 오른손은 도포자락 속에 감추었다. 따라서 쥐상이 아니라 호랑이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다른 상들이 모두 무복을 입은데 비하여 평복을 입고 있다. 또 다른 상에 비해 가늘고 길어서 구황동 왕릉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상은 암릉 위에 서 있어 헌덕왕릉의 상과 시대적으로 상통한다.
이 유적의 복원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소조불이 동서남북에 있었으나 복원 시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박물관으로 옮겨져 부처님의 존재를 지워버렸고 대신 십이지신상을 1층에 배치하였는데 이곳 능지탑 일대에서 혼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경주의 수많은 유물 가운데 최악의 복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강우방 선생은 1994년 낭산 학술세미나에서 소조불의 도면과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유적은 인도나 중국에서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 한 원형을 추정하기 힘든 유적이다.
▲능지탑(陵只塔)
▲능지탑(陵只塔)
▲능지탑(陵只塔)
▲능지탑(陵只塔)
▲복원 후 남은 연화문석재들
▲십이지신상(호랑이, 쥐 자리)
▲십이지신상(소)
▲십이지신상(토끼)
▲십이지신상(말)
▲십이지신상(양)
▲십이지신상(원숭이)
▲십이지신상(닭)
▲십이지신상(개)
▲십이지신상(돼지)
<2009.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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