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비봉산 대곡사
비봉산은 일명 자미산이라고도 부르는 명산으로 고려시대 이전에는 태형산, 또는 대항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삼국시대에 견훤이 이곳에서 성을 쌓고 은거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산을 동쪽에서 바라보면 날개를 펼치고 앉아있는 모습이며 남쪽에서 보면 봉이 위엄있게 날개짓을 하는 듯하다. 또한 서쪽에서 보면 장군이 투구를 쓰고 서 있는 형국이고, 북쪽에서 건너다보면 옥녀봉을 바라보는 용기찬 장군기상으로 보인다. 북쪽 산밑으로는 예천군 지보면과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이 하얀 비단처럼 가로 놓여있고 사방으로 넓은 평야와 학가산, 팔공산, 보현산, 갑장산, 노악산, 속리산 등 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중턱 아래에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왕사였던 지공선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한 대곡사가 자리하고 있다. 창건 당시에는 대국사(大國寺)라 불렀다고 한다. 그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전소되어 조선 선조 38년(1605) 탄우(坦祐)대사가 중건하면서 대곡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면 상주 남장사의 것을 닮은 석장승 한기가 답사객을 맞이한다. 짝을 이루었던 또 한 기의 장승은 몸통이 없어진채 머리만 남아 있다. 장승머리 옆으로는 대곡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석종형 부도 1기가 서있고 주변으로 부도 조각들이 어 있다.
범종각은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처음 건립된 후 조선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동왕 38년(1605)에 탄우대사와 숙종 13년(1687) 태전선사가 중창하였다고 하며 1978년에 보수하였다. 범종각은 다포계 양식의 팔장지붕으로 건축된 중층누각이다. 공포는 외2출목 내3출목을 두었으며 이들은 조선후기에 건립하여 대웅전의 조각수법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종각 안에 봉안되었던 종은 용문사로 가져갔다고 한다.
범종각을 지나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석물이 양쪽에 옹위하며 서 있고 한 단 높은 곳에 대웅전과 명부전 그리고 요사채가 이루는 중정이 나타나고 중정 가운데에 다층서탑이 조용히 서 있다. 이 다층석탑은 기단부 45cm(화강암), 탑신부 20cm(점판암 연화대좌), 탑신고 108cm만 남아있고 상륜부는 유실되었다. 현재 12층에 높이 173cm이지만 6층과 7층 옥개석간의 체감비율차이가 다른 층에 비해급격한 것은그 사이의 한 층이 없어진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옥신석을 갖춘 13층탑으로추정된다. 각층 옥신석이 남아잇지 않고 옥개석도 부분적으로 손상을 입었으나 고려초기 청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전국에 걸쳐 지금가지 조사된 이런 탑은 12기 정도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
대곡사 대웅전은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처음 건립된 후 조선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동왕 38년(1605)에 탄우대사와 숙종 13년(1687) 태전대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대웅전은 기둥 위에 평방을 돌리고 기둥 위와 그 중간에도 각각 공포를배치한 다포계 양식의 불전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구조수법이 비교적 건실한 편으로 조선중기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명부전은 인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38년(1605)에 중창하였고 숙종 13년(1687)에 중건하였다. 명부전의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구조 및 형식과 형태는 오량, 맞배, 겹처마집으로 17~18세기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대곡사 일주문
▲돌장승
▲장승머리
▲석조부도
▲부도편
▲범종루
▲범종루
▲범종루
▲범종루 공포
▲범종루 편액
▲대곡사 편액
▲범종루 앞 석물
▲다층석탑
▲다층석탑과 명부전
▲다층석탑
▲다층석탑과 명부전
▲다층석탑과 대웅전
▲다층석탑과 대웅전
▲다층석탑과 범종루
▲대웅전
▲대웅전 공포
<2009.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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