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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천왕사터 출토 녹유신장상

蔥叟 2009. 2. 27. 06:54

경주 사천왕사터 출토 녹유신장상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의 7세기 신라 고찰 사천왕사터에서 출토된 불교 수호신의 부조상(신장상)은 이땅의 고대 조각품 가운데 첫손에 꼽는 걸작이다. 신라 조각승 양지가 호국 발원을 담아 녹색 유약 입힌 벽돌판(녹유전) 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조각상은 꿈틀거리듯 생생한 조형감이 일품이다. 갑옷 차림에 화살, 칼 등을 든 수호신들이 악귀를 짓밟고 불국토를 지키는 자태가 근육이 실룩거리는 사실적 묘사로 육박해온다.  

 

▲녹유신장상

 

▲신장상 갑주

  

   ‘녹유신장상’으로 불리우는 이 수호신 조각의 정체는 1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히 모른다. 국내 미술사학자들은 절 들머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천왕의 일종이란 설(강우방)과, 사천왕의 부하신 팔부신중상(문명대)이라는 설로 나뉘어 30여 년간 입씨름을 벌여왔다. 그런데 최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일제시대 녹유전이 출토됐던 절터 동서 목탑터를 다시 발굴해보니 이들 통설은 적잖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소 쪽이 서탑터에 이어 동탑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녹유전 신장상은 사천왕상 같은 네가지 상이 아니었다. 단지 사천왕과 비슷한 옷차림을 한 세가지 상으로만 복원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머리에 우아한 보관을 쓴 A상, 화려한 투구를 쓴 채 화살을 든 정면의 B상, 옆이 말린 투구를 쓴 채 칼을 들고 반가부좌 자세로 앉은 C상의 차례로 탑 기단부 한면마다 2번씩 되풀이해 붙인 형태였다. 곧 6개의 녹유신상이 A-B-C, A-B-C 식으로 배치된 모양임이 드러난 것이다. 

 

▲신장상 다리갑주

 

▲신장상 다리갑주

 

   추론해보면, 탑 기단부 사면에 붙은 신장상의 총수는 24개다. 한면에 네 개의 상이 연속된다는 강우방 전 이화여대 교수의 사천왕상설이나, 여덟개 상이 연속된다는 문명대 전 동국대 교수의 팔부신중상설이 모두 빗나간 셈이다. 또 동탑 발굴에서는 이들 녹유상 4기가 탑 기단부에 온전히 박힌 모습으로 출토됐고, 상세히 몰랐던 C상의 전모도 알 수 있게 됐다. 발굴 조각들을 모아보니 A상과 B상은 각 6구씩, C상은 9구나 복원이 가능했다. 

 

   이런 발굴 성과에 학계는 당혹해하고 있다. 녹유상의 정체는 사천왕일 것이며, 녹유전 또한 탑 1층에 신앙 대상으로 봉안됐을 것이란 통설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확인된 세 가지 수호신상의 정체가 불교신의 원형인 인도의 전통 수호신이 중국의 오방신과 만나 생겨난 중국풍 ‘신왕’이라거나, 팔부신중상의 원형이 아니겠느냐는 주장도 내놓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는 실정이었다. 

 

▲생령좌

 

▲생령좌


   그런데 그동안 이 조각들이 사천왕상이라고 주장하온 강우방 전 교수가 “사천왕사의 사천왕상이 3개뿐인 이유를 문무왕 비석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신상들의 차림새는 분명 사천왕인데 왜 상이 3개뿐인지 이해가 안됐는데,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했다.

 

   문무왕 비문에 쓰여 있는 신라 김씨 왕가의 계보에는 '투후(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5행),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6행) 등의 문구가 나온다.

 

   君靈源自▲繼昌基於火官之后峻橫方隆由是克  枝載生英異候祭天之胤傳七葉以

   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誕靈仙岳肇臨  以對玉欄始蔭祥林如觀石紐坐金輿而

 

<5행>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候 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 하였다.

<6행> … 15대조 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靈이 仙岳에서 나와, □□을 개창하여 玉欄을 대하니, 비로소 조상의 복이 상서로운 수풀처럼 많아 石紐를 보고 金與에 앉아 … 하는 것 같았다. …

 

                                                                                                              <신라문무대왕릉비문>

 

   한서(漢書)에 의하면 투후는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 김일제다. 한나라와 전쟁 과정에서 포로가 됐고 무제에 의해 '투후'로 임명됐다. 경주 김씨는 흉노의 후예라는 것이다. '성한왕'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로 추정된다. 사천왕사의 사천왕상은 불법(佛法)의 수호신인 동시에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의 수호신이며 문무왕이 북방에 위치한 훈 제국의 후예임을 비석에 천명했기 때문에 북방을 방위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천왕상 중 북방에 맞서 국토를 수호하는 다문천상(多聞天像)은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생령좌

 

 

 

                                                                               <2009.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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