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삼릉계 석불좌상
삼릉계 석불좌상은 머리가 절단되어 골짜기에 떨어져 불신은 앞으로, 광배는 뒤로 쓰러져 있던 것을 1923년에 보수하였고, 이때 이미 코 이하의 얼굴부분이 손상을 입어 근래에 시멘트로 엉성하게 보충하여 얼굴의 위엄을 몹시 손상시켰다. 광배 또한 위끝이 파손되는 등 손상이 많으나 경주 남산에서는 보기 드문 굴지의 걸작이다. 두 차례에 걸친 '성형수술'에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던 몰골이었던 남산 삼릉계(三陵溪)석불좌상이 당초 모습에 가깝게 복원됐다. 2007년 봄 석불좌상 주변을 발굴조사하여 불상이 원래 있었던 지점을 추정한 데 이어 불교미술사 등 관계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과학적 보존처리와 원형 복원 작업을 거쳐 시멘트를 덧발라 흉할 만큼 지나치게 길게 만들어놓은 석불좌상 얼굴을 원래 형상에 가깝게 되돌려 놓았고, 깨진 광배도 보수했다.
▲삼릉계 석불좌상
▲삼릉계 석불좌상
▲삼릉계 석불좌상
특히 불상의 얼굴은 비슷한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산 삿갓골 제1사터 석불입상과 남산 미륵곡석불좌상, 안계리석불좌상, 남산 용장계석불좌상 등 비교적 얼굴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불상의 사례를 참고하여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상호로 최대한 재현했다. 성스러움을 드러내고자 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표현한 광배는 10여개로 조각난 파편을 붙여 원형을 살렸고, 없어진 부분은 새로운 돌로 조각해 넣었다.
▲삼릉계 석불좌상
▲연화대좌
▲연화대 중대석
연화대좌는 하대석 없이 땅에 있는 지대석 위에 직접 놓은 중대석 위에 얹혀 있다. 8각의 중대석에는 면마다 고식의 안상을 새겼다. 상대석은 보상화로 장식된 화려한 단판 3중엽의 앙련을 조각하여 화려하게 나타내었다. 윗면에는 한쪽에 군의 자락을 조각하여 불신과 연결시켰다. 목에는 부드럽게 삼도를 새겼고 우견편단으로 얇은 가사를 입었다. 의문은 매우 유려하다. 허리는 가늘고 무릎 너비가 불신 높이와 같아서 절대의 안정감이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왼발 위에서 손끝을 아래로 현장하고 있다. 옷주름은 가늘고 어깨가 넓어 장대한 체구이다. 머리는 딴 돌로 만들어 목에 달린 촉에 꽂게 되었고 나발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크고 눈은 반쯤 떴으며, 반원형의 눈썹이 아름답다.
▲상호
▲상호
▲상호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두 줄 돋을새김된 배모양으로 보상화문, 화염문, 신광 안쪽의 잎사귀가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동심원 융기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고 신광에는 어깨의 선을 강조하여 두 줄기의 넝쿨을 새기고 한쪽에 네 잎씩 새긴 약동하는 넓은 나뭇잎들이 안쪽으로 나부끼고 잇다. 두광에는 백호를 중심으로 원을 돌리고 그 둘레에 보주형 꽃잎을 배치하여 연꽃을 피워 놓았고 그 둘레에 다시 둥근 원을 그려 해무리를 나타내었다. 광배의 가장자리에는 화염문을 새겼는데 불꽃들이 춤추는 듯 약동하는 모습이다. 광배에 보상화문을 조각한 것이 매우 희귀한 예이며, 한국 석조광배 중에서 걸작에 속한다.
▲파손된 모습
<2009.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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