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
<국립경주박물관>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은 턱을 괸채 고요히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상은 원래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왕자였을 때 인생의 번뇌로 깊이 사색하는 젊은 싯다르타를 나타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가사유상이 지닌 특색은 사색하는 부처님의 깊고 맑은 정신적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반가사유상은 그 발생이나 전개과정에 있어서도 다른 불상과는 구별된다. 앞을 바라보아 대중과 직접 관계를 갖기 마련인 일반 신상(神像)과는 달리, 반가사유상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듯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
인도에서 다른 불보살과 거의 같은 때에 발생한 반가사유상은 여래상의 협시보살이었다.중국에서는나무 아래에서 사유하는 모습의 태자사유상으로 나타났다가 독립된 상으로 바뀌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6세기부터 약 100년 동안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는데, 대부분 독립된 보살상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중국에는 높이 20~30cm의 흙이나 돌로 만든 예가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1m에 가까운 대형의 반가사유상도 있으며 20~30cm의 소형 작품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지역에서는 경주 단석산의 신선사 마애조상군 가운데에 반가사유상이 있으며, 봉화와 경주 송화산에서 머리와 상반신이 깨져 없어진 대형의 석조반가사유상이 출토되어 당시 신라에서 반가사유상의 제작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
경주시 서쪽 송화산 기슭에 있는 전김유신장군 묘의 재실(齋室)인 금산재에서 1909년 발견된 것으로 머리 부분과 양 팔이 절단되어 없어지고 몸체도 마멸이 심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다. 상체는 나형(裸形)으로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이며 목걸이 장식이 남아 있다. 아래로 늘어뜨린 왼쪽 무릎 위에는 오른쪽 다리를 얹고 그 위에 왼손이 놓여져 있으며 턱 밑을 받쳤던 오른손 팔꿈치 일부가 오른쪽 다리 위에 남아 있어 반가사유의 자세를 한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허리에 두른 군의(裙衣)는 약간 두툼하게 처리되었고 대좌 전체를 덮으면서 길게 늘어져 겹쳐진 옷자락의 끝은 부드러운 굴곡선으로 마무리되었다.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
양쪽 허리로부터 늘어진 군의의 띠자락은 대좌의 좌우 측면에서 밑에까지 내려와 장식적인 효과를 준다. 대좌는 상의 뒷면에서 보면 허리부분이 잘록한 원통형으로 그 밑에 1줄의 음각선이 둘러진 간단한 형태이다. 이와 같이 사방에서 볼 수 있게 원각(圓刻)으로 조각된 석조반가사유상은 경북 봉화군 물야리(勿野里)에서 출토된 예가 있기는 하나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상 중에서는 보기 드문 원형조각상이다. 이 석조반가사유상은 봉화 출토의 반가상과는 형식면에서 약간 다르며 조각기법이 약간 앞선 것으로 보아 대략 6세기말 또는 7세기초의 조각으로 추정된다.
▲반가사유상
<2009.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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