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릉 가는 길 - 경주 선덕왕릉(善德王陵)
신라왕경의 중심에 솟은 나지막한 낭산 정상 가까이에 최초의 여왕인 선덕왕릉으로 전해지는 왕릉이 있다. 왕릉은 산 정상의 남족 부분 일부를 깎아내 평평한 능역을 조성한 후 조성하였다. 이는 신라왕릉가운데 최초로 나타나는 능역조성 방법이다. 왕릉의 외형은 원형봉토분이며 봉분의 높이는 6.77m이며 직경은 23.6m, 둘레는 약 74m에 이른다. 내부 구조는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된다. 봉분자락에는 이 2~3단의 높이로 호석을 둘렀는데 가로로 놓인 것 사이에 세로로 놓여있는 호석도 보인다.
▲선덕왕릉
▲선덕왕릉
그런데 선덕왕릉의 현재 모습은 원형이 아니라 1949년에 배반동 주민들이 보수한 것으로 당시 봉분을 덮고 있던 흙을 제거하고 지금처럼 호석을 다시 축조한 것이다. 새로 고치면서 호석으로 쓰인돌이 원석인지 새로 보충한 것인지도 불분명하며 호석인지 받침석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보수공사비에는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만 나열되었을 뿐 공사의 내용이 적혀있지 않아 원형을 탐구하는데 어려움을 주고있어 안타깝다.
선덕왕릉은 피장자가 명확하게 밝혀진 첫번째 왕릉이다. 선덕왕릉의 위치에 관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十六年, 八日{月}, 王薨. 諡曰<善德>, 葬于<狼山>.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선덕이라 하고 낭산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여왕전>
○至其月日, 王果崩, 群臣葬於狼山之陽.
그 달의 그 날에 이르니 과연 죽었으므로 신하가 낭산 양지바른 곳에 장사지냈다.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과 현재의 선덕왕릉 입지는 현재의 왕릉과 정확히 부합된다. 왕릉 조성과 관련하여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선덕왕릉
▲선덕왕릉
제27대 덕만의 시호는 선덕왕으로 성은 김씨이며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정관 6년(632년)에 왕위를 올라 나라를 다스린 지 16년 동안에 미리 안 일이 세가지 있었다. ...(중략)...
셋째는 왕이 아무런 병도 없는데 여러 신하에게 이르기를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인즉, 나를 도리천 속에 장사를 지내도록 하여라."
여러 신하들이 그 곳의 위치를 몰라 물으니 왕이 말하기를
"낭산 남쪽이다." 하였다.
그 달의 그 날에 이르니 과연 죽었으므로 신하가 낭산의 양지바른 곳에 장사지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난 뒤 문무대왕이 사천왕사를 왕의 무덤아래에 세웠다. 불경에 사천왕천의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제야 대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 있었다. ...(하략)...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조>
낭산이 도리천이라는 것은 이곳이 바로 부처님이 계시는 수미산이라는 것이다. 수미산은 불교적 우주관에서 세상의 중심이다. 다시말해서 신라가 바로 우주의 중심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신라불국토 사상의 하나로서 불교가 발생한 인도가 서천축이요, 신라는 동천축이라는 신라인들의 자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2008.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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