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금강산 건봉사(金剛山乾鳳寺)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에 있는 절로 6·25전쟁 이전까지는 31본산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520년(법흥왕 7)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원각사(圓覺寺)라 이름했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건봉사는 법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사실 법흥왕 7년이면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이고 아도화상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승려이기 때문이다.758년(경덕왕 17)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한국 만일회의 시초이다.
▲불이문
▲불이문
▲금강저 석주
신라말 도선국사가 중건한 뒤 절 뒤쪽에 봉형(鳳形)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개칭했으며 1358년(공민왕 7) 나옹(懶翁)이 중수하고 건봉사로 다시 바꾸었다. 1464년 세조가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願堂)으로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을 짓게 되자 이때부터 역대 임금의 원당이 되었다. 6·25전쟁 전에는 대웅전·관음전·사성전·명부전·어실각·불이문 등 총 642칸에 이르렀으나 6·25전쟁 때 거의 폐허화되었다.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외에도 8기의 탑, 48기의 부도, 31기의 비석, 44점의 고승영정 등이 있었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우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은 개천을 따라 10리를 넘게 흘러갔다고 한다. 1878년 건봉산에 큰불이 나면서 당시 건봉사의 건물 중 3천칸이 소실되었다. 그 뒤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단지 절 입구의 불이문만 남아 있다.
▲불이문 편액
▲솟대형 석주
▲석주
건봉사 불이문은 독특하게도 기둥이 4개다. 1920년에 세워졌으며 해강 김규진 선생이 글씨를 썼다. 능파교와 함께 유일하게 불타지 않고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사찰의 대문인 금강문 구실을 하는데 1920년 세워진 것으로 ‘두 가지 마음을 갖지 말고 수행에 정진하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누각의 돌기둥 네 개에는 붉은 색 칼 문양의 ‘금강저’가 새겨져 있다. 불교에서 ‘예리한 지혜의 칼’이란 뜻으로 사찰 수호를 상징한다.
불이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솟대 모양의 돌기둥을 만나게 되는데 높이가 3m로 규모가 꽤 크며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지만 꼭대기에 오리가 앉아 있어 솟대라 할 수도 있겠다. 오리는 대웅전 쪽을 바라보게 앉혀 주목된다. 석주의 동쪽면에는 한글로 ‘나무아미타불’을 북쪽면에는 한문으로 ‘南無阿彌陀佛’을 새겼으며, 남쪽면에는 ‘大方廣佛華嚴經’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돌기둥이 서있는 부분은 널직한 공터로 되어있는데, 과거 건봉사의 번창했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석주
▲능파교
▲능파교
이곳 절터와 대웅전 사이 좁은 계곡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놓여 있다. 능파교라 하는 이 돌다리는 건봉사의 수많은 건물터 중 그나마 형상이 제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주위 풍경과 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다.
다리의 중앙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쌓아서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홍예는 하부 지름이 7.8m이고 높이는 기석의 하단에서 4.5m이므로,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조선 숙종 34년(1708)에 건립된 경내 불이문 옆의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에 의하면 이 다리가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영조 21년(1745)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를 고쳐 쌓는데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능파교는 규모가 비교적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리로, 축조연대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비석을 갖추고 있어 홍예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능파교와 봉서루
▲봉서루
▲봉서루
능파교를 건너면 봉서루를 만나는데 봉서루 앞에도 또한 돌기둥이 서 있는데, 이 돌기둥에는 십바라밀을 형상화한 상징기호가 5개씩 10개가 새겨져 있다. 십바라밀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10단계 수행을 말한다.
①원(圓)은 보름달을 나타낸 것으로 보시바라밀을 상징한다. 재(財).법(法).무외(無畏)의 3종 보시로써 중생심을 따라 모두 만족케 하는 것이 마치 청정 허공에 광명월륜(光明月輪)이 치우침이 없이 원조(圓照)함과 같으므로 보시바라밀을 보름달에 비유한 것이다. 달의 이와 같은 상징적 의미와 관련된 것으로 수월보살, 만월보살 등 관음보살의 화현들이 있고, 같은 뜻을 표현한 말로 ‘월인천강(月印千江)’이 잘 알려져 있다.
▲금강산 건봉사 편액
▲십바라밀석주
▲십바라밀석주
②반원은 반달 또는 상현달을 나타낸 것으로 지계바라밀을 상징한다. 옳지 못한 일과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정계(淨戒)를 점차 이루어 나가는 것이 마치 상현달이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살아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지계바라밀을 상현달에 비유한 것이다.
③신발[鞋經]은 인욕바라밀을 상징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치욕을 견디어 참으면서 안으로 법성을 밝히는 것이 마치 신이 밖으로부터 찔리는 것을 방어하여 발을 안전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신발에 비유한 것이다.
▲대웅전영역
▲대웅전
▲극락전영역 입구
④가위(剪刀)는 정진바라밀을 상징한다. 한 곳에 마음을 쏟아 수행하는 도중에 마음을 딴 데로 옮기지 않는 것이 마치 가위로써 물건을 자름에 유진무퇴(有進無退)함과 같으므로 가위에 비유한 것이다.
⑤뭉게뭉게 피어나는 모습의 구름은 선정바라밀을 상징한다. 마음을 깊은 한 곳에 모아서 일체의 번뇌를 소멸시키는 것이 마치 많은 구름이 드리워 대지의 열염(熱炎)을 식혀, 맑고 서늘하게 함과 같음으로 구름에 비유한 것이다.
▲극락전영역 입구
▲십바라밀석주
▲십바라밀석주
⑥금강저는 지혜바라밀을 상징한다. 지혜의 공장(工匠)으로써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의 산을 뚫고 부수어 번뇌의 광맥을 발견하고 깨달음의 불로써 단련하여 자기 불성의 금보(金寶)를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마치 금강저의 견고함과 날카로움과 밝음이 구족하여 앞으로 나아감에 장애가 없는 것과 같으므로 금강저에 비유한 것이다.
⑦작은 두 개의 원을 수평으로 둔 것은 두 개의 샘(泉)을 나타낸 것인데, 방편바라밀을 상징한다. 방편으로 중생을 성숙케 하여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하는 것이 마치 근원이 하나인 샘을 두 개의 샘으로 나누어 동서(東西)에 두루 편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좌우쌍정(左右雙井)에 비유한 것이다.
▲십바라밀석주
▲극락전 영역
▲적멸보궁
⑧작은 두 개의 원을 아래위로 둔 것은 앞과 뒤의 샘을 나타낸 것으로 원(願)바라밀을 상징한다. 일체의 불찰(佛刹)과 일체 중생의 바다에 큰 서원(誓願)을 가지고 편입하여 보살행을 닦는 것이 마치 앞과 뒤의 두 개의 샘에서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음료를 각기 얻는 것과 같으므로 전후쌍정(前後雙井)에 비유한 것이다.
⑨두개의 동심원과 그 내부의 작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이 도형은 집과 그것을 둘러싼 견고한 담을 나타낸 것으로 역(力)바라밀을 상징한다. 일체의 불국토에 정력(正力)으로 들어가 정등정각을 이루는 것이 마치 집과 담을 수리.축성하여 밤낮으로 순시하여 외침을 막는 것과 같으므로 탁환이주(卓環二周)에 비유한 것이다.
▲진신사리탑
▲진신사리탑
▲진신사리탑
⑩큰 원 안에 세 개의 작은 원을 그린 것은 달 속에 별이 들어 있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지(智)바라밀을 상징한다. 삼세의 일체법을 여래의 지혜로 두루 깨우치되, 가로막는 것도 없고 거리낌도 없는 것이 마치 달이 별 무리들 속에 있으면서도 멀고 가까운 곳을 다 비치는 것과 같으므로 성중원월(星中圓月)에 비유한 것이다.
건봉사에는 사명 대사가 모셔 놓은 진신사리를 봉안한 진신사리탑이 있고, 이 탑을 참배하기 위한 적멸보궁이 있다. 진신사리탑은 일명 세존영아탑(世尊靈牙塔)이라고 하여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봉안하였다. 이 사리탑은 1605년(선조 38) 사명 대사가 일본에서 되찾아 온 부처님의 치아와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1724년(경종 4)에 건립하였다. 따라서 치아와 사리가 건봉사로 온 뒤 120년가량은 다른 곳에 모셔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신사리탑
▲탑비
▲진신사리탑
높이 3.45m인 이 탑은 한 변이 1.8m인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팔각의 모양을 이루며 우뚝 서있다. 기단부 하대석의 밑부분에는 8면마다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그 위로 16잎의 복련(覆蓮)이 조각되어 있는데, 귀꽃을 8면의 모서리에 돌출되게 세워 놓지 않고 16개의 연꽃잎 속에 바로 새겨 넣었다. 기단부 중대석에는 동심원을 새기고 그 안에 범자(梵字)와 만(卍)자를 새겨 놓았다. 이 경우 사리탑의 정면에는 ‘卍’이나 ‘옴’이 와야 한다. 그런데 현재에는 다른 범자가 정면에 놓여 있다. 이는 1986년 도굴꾼들의 만행이 있은 후 잘못 놓은 것으로 보여진다. 마땅히 고증을 거친 다음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진신사리탑
▲탑비
<2008.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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