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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충효당(忠孝堂)

蔥叟 2008. 9. 21. 06:10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忠孝堂)

 

   하회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의 상류주택으로 조선 선조 때 명재상 서애 유성룡(柳成龍:1542~1607)의 집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장자인 여가 재건한 것을 증손 의하(宜河)가 확장·중수했다. 유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징비록』과『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 받고 있다.


   집의 구조는 서쪽을 앞면으로 긴 일자형 행랑채(12칸)를 두고 안쪽으로 口자 모양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가 연이어 있다. 그뒤로 사당이 있다.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바로 보이는데, 사랑채는 보수공사 때의 개작(改作)으로 보이는 견치석(犬齒石)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사랑채는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8칸의 대청 뒷면에 온돌방을 두어 6칸으로 되어 있으며 앞면과 옆면에 계자난간을 설치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왼쪽에서부터 사랑방, 대청마루, 방,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 대청에 걸려 있는 ‘충효당(忠孝堂)’이라고 쓴 현판은 명필가였던 허목(1595∼1682)이 쓴 것이라고 한다. 당호를 '忠孝堂'이라고 한 것은 서애가 임종할 무렵에 자손들에게 꼭 지킬 것을 권한 "충과 효 외에 달리 할 일은 없느니라."(忠孝之外無事業)는 말을 받든 것이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돌보던 공간으로 동북쪽에 부엌을 두고 ㄱ자로 꺾여서 안방, 대청, 건넌방이 있다. 또한 건넌방 앞에는 마루와 2칸의 온돌방, 부엌이 있으며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안채는 사랑채에 이어진 중간 행랑채의 중문을 통해 드나들도록 되어 있으며, 이 건물도 견치석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웠는데 대청 전면은 두리기둥으로 되어 있다. 안채도 역시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며 바닥은 우물마루인데 마루보다 방의 면적이 훨씬 넓다. 이 건축물은 상류층의 주택이면서도 모든 부분이 기능적으로 처리되고 방의 면적이 커지는 등 민간형을 따른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충효당 행랑채

 

사랑채

 

▲충효당(忠孝堂) 편액

 

사랑채

 

안채

 

안채

 

안채

 

안채

 

안채

 

안채

 

안채

 

사당

 

만지송

 

 

 

<2008.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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