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 주일재(主一齋)
남촌의 충효당 뒷편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남향(南向)집이다. 이 집은 서애 류성룡선생의 증손(曾孫) 류만하(柳萬河)공이 충효당에서 분가할 때 지은 것으로 그의 아들 주일재(主一齋) 류후장(柳後章, 1650∼1706)공이 증축하였다. 류후장공은 주역(周易)에 능통하였고 퇴계 선생의 도학(道學)을 더욱 닦아 일찍이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았으며 건원릉참봉(建元陵參奉) 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에 이르렀다. 이 집은 ㅡ자형 사랑채와 ㅡ자형중문간채, 곳간이 붙은 ㅡ자형 안채와 사당(祀堂)이 있는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다. 집 이름은 선생의 호를 따라서 주일재라고 부른다.
▲주일재(主一齋)
주일재에서는 대문채를 두지 않고 길 따라 쌓은 담장 가운데 열려진 트임대문을 내어 출입케 했다. 대문이 없기 때문에 노출되기 쉬운 안채를 보호하기 위하여 안채 출입 통로인 중문간 앞쪽에 중문간 폭만큼의 짧은 차면담을 두고 있다. 중문간채와 접한 사랑채가 '一'자형으로 길게 놓여 있고, 그 뒷편에 모두 '一'자형인 안채·광채·협문간채가 각기 조금씩 떨어져 안마당을 감싸면서 전체적으로 튼 '口'자를 이루고 있다. 건물 사이사이에 사이담을 시설하여 안마당을 막고 또 안채 뒤쪽에도 안채와 연결된 담장을 좌우에 쌓아 여성전용 바깥 작업공간이 되게 하였다.
▲주일재(主一齋)
안채 오른쪽 뒷편에는 사당이 몸채와 달리 동남향으로 비스듬히 앉아 있다. 사랑채는 각각 2칸통으로 구성된 사랑방과 사랑대청을 좌우로 배열하고 사랑방 앞에 쪽마루를 부설하였다. 대청은 전면만 개방하고 나머지 삼면을 일반적인 판벽으로 하지 않고 흙벽에 두 짝 판장문을 달았다. 사랑방과 대청 사이에는 필요에 따라 공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3분합 '들어열개문'을 시설하고 있다. 대청 중앙 앞뒤에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워 보아지(들보를 받는 첨차처럼 생긴 부재)를 끼운 3량가 홑처마 맞배집이다. 기둥 상부에는 안쪽만 초각한 보아지를 끼우고 도리 밑에 장혀를 받쳤으며, 대들보 위에는 제형판대공을 세웠다.
▲사당
안채는 좌로부터 부엌·안방·안대청·건넌방이 차례로 놓여 있다. 안방과 안대청 앞에는 퇴칸을 들이고 그 좌측 끝에 부엌과 연결되는 문을 내었다. 안방 뒤벽에는 벽장이 마련되어 있고 안대청 뒤쪽과 건넌방 정·측면에는 쪽마루가 놓여 있다. 전후 2칸인 건넌방은 가운데 네 짝 미세기문으로 나누어져 앞뒤방 각기 아랫상방과 웃상방으로 불린다. 대청에서 이 두 방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을 웃상방 쪽에만 내고, 또 대청 배면 골판문을 머름 없이 흙벽에 설치한 것이 눈에 띤다. 모두 방주를 세우고 보아지를 끼운 홑처마 팔작집이다. 가구는 장혀를 받친 5량가로 대량 위에는 동자주대공을, 종량 위에는 제형판대공을 세웠다.
▲차면담
사랑채 좌측에 접한 중문간채는 부엌과 작은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 전방 우측의 협문간채에는 사당으로 통하는 협문이 나있다. 사당은 단칸으로 정면에만 높은 굽널의 두 짝 띠살문을 단 3량가 홑처마 맞배집이다.
<2008. 8. 8>
'◈한국문화순례◈ > 영가문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동 하회마을 담연재(澹然齋) (0) | 2008.09.20 |
---|---|
안동 하회마을 류시주 가옥 (0) | 2008.09.19 |
안동 하회마을 남촌댁(南村宅) (0) | 2008.09.17 |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 (0) | 2008.06.17 |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 (0) | 2008.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