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릉 가는 길 - 경주 금관총(金冠塚)

2008. 6. 18. 08:01◈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신라왕릉 가는 길 - 경주 금관총(金冠塚)

 

금관총(金冠塚)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금관이 출토된 고분이다. 금관총은 1921년에 민가의 담장을 고치다가 우연히 유물이 발견되어 단 4일에 걸친 발굴을 완료하여 세계 고고학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고분은 외형상으로 원형봉토분으로 추정되며 내부구조는 적석목곽분이었다. 발굴당시에 이미 많이 파괴된 상태였고 매장주체부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금관총(金冠塚)

 

▲금관총 출토 금관

 

   봉분 가운데 지상에 목곽을 설치하였는데 동서 4.8m, 남북 약2.1m로 추정하였으나 유물이 출토된 구역만을 측정한 것으로 추측되며, 봉분이나 적석의 규모에 비하면 실제로 이것보다 더 컸을 것으로 보여진다. 목곽 안에는 동쪽에 각종 부장품이, 서쪽에 칠관(漆棺)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계획적이고 과학적인 발굴을 하지 못하고 비전문가의 손에 의해 마구 파헤쳐짐으로서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쉬운 것이었다.  

 

▲금관총(金冠塚)

  

▲금관총(金冠塚)

 

   관 동쪽의 부장품부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금빛 찬란한 순금제 금관이 출토되어 이를 기념하여 ‘금관이 출토된 무덤’이라는 뜻에서 금관총으로 부르게 되었고 신라시대의 적석목곽분에서 금관이 출토된 최초의 무덤으로 기록되었다. 금관총 금관은 외관의 경우 머리에 쓴 상태로 발견되었고 내관은 관 밖에서 따로 출토되었다. 금령총 등과 함께 5세기 후반 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관총(金冠塚)

 

▲금관총(金冠塚)

  

   한편 금관총 봉토는 바닥 지름이 약 45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쪽에 봉황대와 사이에 공간이 없이 거의 붙어있는 상태였을 것으로 보이며 역시 서쪽에는 바로 인접하여 서봉총이, 남쪽에는 금령총이 연이 있고, 북쪽은 거주공간으로 보여 오늘날 조선왕릉과 같은 제사시설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무덤 밖에서 지속적인 제사의식은 거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2008.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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