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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비슬산 대견사터(大見寺址)

蔥叟 2008. 6. 3. 08:00

 달성 비슬산 대견사터(大見寺址)

 

   비슬산 조화봉 아래에 자리한 대견사터는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창건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구전에 의하면 당나라 문종(文宗)이 절을 지을 곳을 찾고 다녔는데, 하루는 낯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사신을 파견하여 찾게 하였다. 결국,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개 되자 신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이 절터이다. 이 터가 대국(唐)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절을 창건한 뒤 대견사(大見寺)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지만, 태종 16(1416) 2월 29일과 세종 5년(1423) 11월 29일 이 절에 있던 장륙관음석상(丈六觀音石像)이 땀을 흘려 조정에 까지 보고 되었고, 종파는 교종(敎宗)에 속하였다고 한다. 절의 폐사에는 빈대와 관련된 일반적인 설화가 전래되고 있으며, 그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로 전해지고 있다. 그 뒤 1900년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재인(李在仁)이 중창하였으나 1908년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1909년 다시 폐허화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30m, 높이 6m의 축대가 남아있고 복원된 3층석탑과 ,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동굴대좌(洞窟臺座)와 그리고 동굴대좌 입구 절벽에 유가종심인상(瑜伽宗心印像)이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유가심인(瑜伽心印)'은 으뜸 깨달음의 순간을 공(空)으로 표현하고 위로는 부처를 형상화하는 극락 만다라의 세계를 나타내는 밀교 문양이다. 여기 나오는 이 '유가'는 아래쪽 산자락에 있는 유가(瑜伽)사에서 한 번 더 확인되고 유가사가 포함돼있는 달성군 유가면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다. 유가는 인도에서 말하는 요가이며 요가는 마음 작용의 멈춤과 사라짐, 즉 열반을 뜻한다. 수련 방법으로 유가(요가)는 호흡을 조절함으로써 마음을 가다듬고 바른 이치에 걸맞은 상태에 이름을 일컫는다.


   또 금당터에는  연화하대석 하나가 남아있으며 삼층석탑 앞에는 불상광배 조각 하나가 남아있다. 절터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샘터가 있으며, 가뭄때는달성군 사람들이 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대견사터(大見寺址) 전경

 

▲대견사터(大見寺址)

  

 ▲대견사터(大見寺址)

 

▲대견사터(大見寺址)

  

 ▲동굴대좌에서 본 삼층석탑

 

 ▲광배편

 

 ▲동굴대좌

 

  ▲동굴대좌

 

▲건물터

 

▲금당터

 

▲금당터

 

▲불대좌

 

 ▲유가종 심인

  

 ▲유가종 심인

  

▲우물

 

▲우물

 

 

 

<2008.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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