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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황악산 직지사(黃岳山直指寺)

蔥叟 2007. 9. 26. 06:50

김천 황악산 직지사(黃岳山直指寺)

 

   직지사는〈사적기 事蹟記〉에 의하면 신라시대인 눌지마립간 2년(418) 아도화상(我道和尙)이 선산 도리사(桃李寺)를 개창할 때 함께 지었던 절이라고 한다. 직지사 사명의 유래는 3가지나 전한다. 그 첫번째는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개창할 때 도리사에서 황악산 직지사터를 손가락으로 곧게 가리키며 저곳에 절을 지으라고 해서 직지사(直指寺)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두번째 9세기에 유행한 구산선문의 한 종파인 성주산문의 조사(祖師) 무염대사 머물렀던 심묘사에 부속된 절로 남종선의 가르침인 종지를 나타낸 '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란 말 가운데에서 '直指'를 따와서 지었다는 설이다. 나머지 하나는 고려 태조때 직지사를 크게 중창한 능여대사(能如大師)가 큰 불사를 하면서 자(尺)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가늠하여 일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645년(선덕여왕 14) 자장율사가 중창한 이래로 930년(경순왕 4), 936년(태조 19)에 천묵대사(天默大師)와 능여대사가 각각 중창하여 대가람이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출가하여 득도한 절로도 유명하다.

 

*직지사 일주문

  

*직지사 일주문

 

*직지사 일주문 편액

 

*직지사 자하문(일주문) 편액

 

*직지사 금강문

 

*직지사 금강문

 

*직지사 금강문 편액

 

*직지사 천왕문

 

*직지사 천왕문

 

*직지사 천왕문 편액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만세루

 

*만세루

 

*대웅전에서 본 만세루

 

*만세루 편액

 

*대웅전

 

   직지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건물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조선전기에는 대웅대광명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선조 35년()1602에 대웅전을 새로 세웠다. 이후 인조 27년(1649)에 중영(重營)이 있었고, 영조 11년(1735)에 다시 중창하였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며 지붕형식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직지사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짜임새가 있으며, 높은 천장에 화려하면서 절제된 장식은 종교적인 장엄함을 더한다. 세분의 부처님을 모신 수미단은 효종 2년(1651)에 조성된 것으로 용, 물고기, 개구리, 연꽃 등 여러 무늬들을 소박하게 조각하였다. 폭이 9m에 이르는 후불벽 뒤에는 활달한 필치로 그린 관음도가 있으며, 다른 변면도 화려한 벽화로 장식되었다. 

 

*대웅전

 

*대웅전

 

*대웅전 앞 석등

 

*대웅전 동삼층석탑

 

   대웅전 앞마당의 두 쌍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원래는 문경군 산북면의 도천사터에 쓰러져 있던 것인데, 1974년 이곳으로 옮겼다. 이 탑들은 대체로 통일신라 사?ㅇ석탑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삼층석탑에서 보이는 이중기단이 아니라 단층기단인 것이 특이하다. 기단에는 면마다 안기둥과 귀기둥을 돋을새김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몸돌에는 다른 장식 없이 귀기둥만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수평을 이룬 처마선 아래로 1층부터 차례로 5,5,4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으며, 1층 지붕돌에는 추녀 끝마다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있다. 상륜부는 1976년에 추정 복원한 것이다. 이 탑들은 단층기단인데다 1층 몸돌이 유난히 길게 올라가 있어서 시원한 상승감이 돋보인다.

 

*대웅전 서삼층석탑

   

*청풍료(성보박물관)

 

*청풍료 삼층석탑

 

   청풍료 앞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으로 원래 구미시 선산읍 원동 낙동강변 강락사터로 전해지는 절터에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1968년 경북 선산군청 앞뜰로 옮겼다가 1980년 다시 이곳으로 옮겼으며, 이때 상륜부를 추정 복원하였다. 기단이 단층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고루 갖추고 잇다. 기단은 한 면을 두 장의 돌로 짜맞추었는데 안기둥과 귀기둥을 돋을새김했을 뿐 별다른 장식은 없다. 탑신을 이루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몸돌에는 다른 장식 없이 귀기둥만 돋을새김하였으며, 지붕돌에는 수평을 이룬 처마선 아래로 5단의 처마받침을 두었다. 1층 몸돌의 높이가 2,3층에 비하여 성큼하게 높으면서도 지붕돌의 두께와 폭이 알맞아 단층기단의 탑이면서도 차분한 안정감과 경쾌한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  

 

*청풍료 삼층석탑

 

*청풍료 삼층석탑

 

*사명각

  

   사명각은 임진왜한 당시 나라를 구한 호국대성 유정(1544~1610) 사명대사의 영탱을 봉안하여 대사의 유덕을 기리는 건물로서 조선 정조 11년(1787)에 창건되었다. 대사의 속성은 임씨 자는 이환이며, 법명은 유정, 법호는 사명 또는 송운이다. 1544년 10월 17일에 경남 밀양의 무안면 고나리에서 태어나 15세에는 황악산 아래 유촌 황여원으로부터 유학을 수학하더니 곧 황악산 직지사로 출가하여 주지 신목화상의 제자가 되었다.18세가 되는 명종 16년(1561)에는 선과에 합격하고, 30세인 선조 6년(1573)에는 직지사의 주지가 되었고, 49세가 되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적의 진중에 여러 차례 드나들며 왜적을 설득하여 백성들의 화를 면하게 하더니 선조 37년(1614)에는 61세의 몸으로 일본에 건너가 억류되었던 포로 3000여면을 데리고 귀국하므로 선조는 가의대부로 삼아 어마를 하?는 등 대우가 극진하였다. 광해군 2년(1610) 67세를 일기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입적하니 시호를 자통홍제존자라 하였다.

 

 

*사명대사 진영

 

*관음전

 

*응진전

 

*명부전

 

*명부전 지장보살상

 

*비로전

 

   비로전은 일명 천불전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대조의 지원으로 능여조사와 그의 제자 신흥, 해안 등에 의하여 초창되었다. 직지사 내에서 임진왜란을 모면한 유일한 건물이다. 현종 2년(1661) 인계대사가 중창하였고, 숙옹 28년(1702) 정행대사 등의 중수와 함께 다시 1899년의 중수를 거쳐 1975년 주지 녹원화상이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영식이며 총 51평이다. 천불상은 고려시대 속리산의 경잠대사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 전한다. 

 

*비로전 삼층석탑

 

*비로전 삼층석탑

 

   비로전 앞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문경군 산북면 도천사터에 있던 3기의 석탑 중 하나이다. 1974년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1976년 상륜부를 추정 복원하였다. 이탑은 대웅전 팡 삼층석탑과 크기나 양식, 세부가 모두 같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동일한 3기의 석타빙 한 곳에 있는 경우는 그 밖의 예가 남아있지 않아서 매우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또한 이 탑은 삼층석탑이면서도 이중기단이 아닌 단층기단 석탑으로서, 이러한 예들인 문경, 상주, 선산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방의 특색으로 이해되고 있다.

 

*비로전 삼층석탑

 

*황악루

 

*황악루 편액

 

*약사전

 

*석불좌상

 

*서별당

 

*정종대왕 어태봉 

 

*직지사 일원

 

*직지사 일원

 

*직지사 일원

 

*직지사 일원

 

 

 

<2007.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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