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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불령산 청암사(佛靈山靑巖寺)

蔥叟 2007. 9. 28. 08:02

김천 불령산 청암사(佛靈山靑岩寺)

 

   불령산 청암사는 신라 헌안왕 3년(849)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해발 1,317m의 불령산에 위치하고 있는 가람으로서 부처님의 영기(靈氣)가 서린 청정한 도량으로 불령산이라는 산이름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청암사는 숙종때 인현왕후와도 인연이 깊다.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의 질투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었을 때 이곳 극락전안에 있는 별채에 기거했었다는 것이다. 인현왕후를 기리던 최무수리가 숙종의 눈에 들어 영조를 낳기까지 왕실 내전과 관련된 얘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최송설당비

  

*청암사 계곡

 

*청암사 가는 길

 

   청암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바위에 새겨진 최송설당비이다. 대운스님이 청암사를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고 중창할 때 대시주가 바로 최송설당이었다. 그녀는 김천 출신으로 영친왕의 보모상궁이었으며, 영친왕의 생모인 엄비와 고종의 비호 아래 비상한 수완을 발휘하여 엄청난 재산을 모은 인물이었다. 

*비각

 

*회당비각(晦堂碑閣)

 

*대운당비각(大雲堂碑閣)

 

*천왕문

 

*우비천(牛鼻泉) 

 

   청암사는 소가 왼쪽으로 누워있는 와우형(臥牛形)의 지형이다. 이 샘은 소의 코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우비천이라고 하며 코샘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이 코샘에서 물이 나오면 청암사는 물론 증산면 일대가 부자가 된다고 하며, 이물을 먹으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전하여져 제물을 멀리하려는 스님들은 이 샘을 지날 때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청암사 전경

 

*청암사 전경

  

*다층석탑

 

*다층석탑

 

   대웅전 앞 다층석탑(삼보탑)은 1938년에 제작된 것으로 재대석이 우주없이 한 돌로 이루어진 기단을 이단으로 쌓았다. 탑신은 전체적으로 가늘고 긴 자태를 보인다. 일층 탑신은 아치형의 앝은 감실에 사방불을 돋을새김하였다. 상륜부는 노반과 보주가 장식되어 있다. 진영각은 조사들의 공덕을 기념하기 위하여 고승의 영정과 조사상 등을 보안한 전각이다. 진품 영탱 22위는 현재 직지사 박물관에 있다. 대웅전 전방에 위치한 누각인 정법루는 여름철 강당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육화료는 을자형의 귀틀을 지닌 건물로 총 108평이다. 현재 청암사승가대학 중심인 대방채로 쓰여지고 있다.  

*다층석탑 탑신부

 

*다층석탑 기단부

 

*다층석탑 탑신부 여래상

 

*다층석탑 탑신부 여래상

 

*다층석탑 탑신부 여래상

 

*다층석탑 탑신부 여래상

 

*다층석탑 기단부 꽃무늬

 

*다층석탑 기단부 꽃무늬

  

*대웅전

 

   청암사 대웅전은 수차례의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것을 1900년대 초에 중건한 것이다. 대웅전의 기단은 2단 석축으로 조성되었다. 건물은 정명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청기와를 얹고 용마루 양끝을 장식용 기와로 장식했다. 건물의 외부는 금단청, 내부는 모로단청으로 채색되어 있다. 건물 내부의 중앙 칸 뒤로 기둥 2개를 세워 불벽을 치고 불단을 꾸몄다.  

*대웅전

 

*대웅전

 

*대웅전 기단부 서수상

 

*대웅전 기단부 서수상

  

*대웅전

 

*대웅전

 

*진영각(眞影閣)

 

*육화료

 

*육화료(六和寮) 편액 

  

*극락전 전경

 

   극락전은 1905년 대운 화상에 의하여 건립되기 전 스님이 빨간 주머니를 얻는 꿈을 꾸고 한양에 가니 어떤 보살님 한 분이 대시주를 하며 자신을 위해 염불해 죽은 뒤에도 3년 동안 염불해주기를 원하였다. 대운화상은 극락전은 건립하고 만일회를 결성하여 극락전에서 염불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한다. 극락전은 숙종의 정비인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있을 때 이곳에서 기거하였다고 한다. 담장과 함께 솟을대문이 있어서 마치 사대부집 민가를 연상케한다.

 

*극락전 전경

 

*극락전 대문 인왕상

 

*극락전 대문 인왕상

 

*극락전

 

*보광전

 

   극락전 뒷편에는 보광전이 자리하고 있다. 보광전을 지은 것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조선 정조 6년(1782)에 고쳐 세운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존재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에 앞서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가 장희빈 때문에 폐위되어 이곳 청암사 극락전에 은거하였는데, 이 때 극락전 서쪽에 인현황후의 복위를 빌기 위해 보광전을 세웠다는 설도 있다. 그 뒤 광무 9년(1905)에 다시 세웠으나 1911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듬해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과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을 같이 보이고 있다. 안에는 42수의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고 벽면에 산신도(山神圖), 독성도(獨聖圖), 신상도(神像圖) 등이 걸려 있으며 상벽에는 불화를 그려 놓았다. 현존하는 전통 건축 가운데 드문 절충식 구성법을 보이고 있어 절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보광전

 

*보광전

 

 

 

<2007.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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