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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갈항사터 삼층석탑

蔥叟 2006. 7. 23. 06:41

김천 갈항사터 삼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원래 김천의 갈항사터에 서 있었는데 1916년 도굴꾼들에 의한 피해를 입은 후 서울 경복궁 뜰에 옮겨졌다가 2005년 신축된 국립중앙박물관의 뜰에 이건되었다. 두 탑은 규모와 양식이 똑 같은데 서탑은 현재 3층몸돌까지만 남아있고, 동탑은 3층 지붕돌까지 남아있고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2중 기단에 지대석과 하층기단 면석을 하나의 돌로, 상대갑석은 4장, 하대갑석은 8장의 돌로 구성하였다. 탱주는 상하층 모두 2개씩이며 탑신부는 각층모두 몸돌과 지붕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고 층급받침은 5개이다.

 

   동탑의 상층기단부에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탑에서 탑 표면에 명문이 있는 유일한 예로서, 이두문까지 섞여있어 더욱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 동탑의 지붕돌 처마끝에 남아있는 정연한 못구멍은 탑에 금속판 등으로 표면을 덮어 장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면석에 새겨진 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二塔 天寶十七年戊戌中立在之 娚姉妹三人 業以成在之 娚者 零妙寺言寂法師在旀 姉者 照文皇太后君 在旀 妹者 敬信太

 

이 두탑은 천보17년(경덕왕17, 758) 무술년에 세웠다. 오빠와 두 자매 3인의 힘으로 이루었다. 오빠는 영묘사 언적법사이시며, 손윗누이는 소문황태후이시며, 손아래누이는 경신태왕의 이모이시다.

 

 

 

   당나라 현종의 연호인 천보는 15년까지인데도 이 탑에는 천보 17년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임금이 바뀌고 연호가 달라진 것을 모르고 계속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천보 17년은 경덕왕 17년(758)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불국사와 석굴암을 조성하던 시기로  가장 난숙한 문화의 꽃을 피우던 무렵이다. 수도인 서라벌에서 석가탑이 만들어지던 그 시기에 지방에서 신라 석탑의 전형양식이 어떻게 파급 확산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탑이다.

 

 

*갈항사터 동서삼층석탑

 

*갈항사터 동서삼층석탑

 

*갈항사터 동서삼층석탑

 

*갈항사터 동서삼층석탑

 

*동삼층석탑

 

*동삼층석탑

 

*동삼층석탑

 

*동탑의 명문

 

*동삼층석탑

 

*동삼층석탑

 

*서삼층석탑

 

*서삼층석탑

 

*서삼층석탑

 

 

<2006.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