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경주 봉서산 원원사터

蔥叟 2006. 5. 2. 10:01

경주 봉서산 원원사터

 

원원사터는 경주의 동남쪽 토함산의 끝자락인 봉서산 중턱에 있다. 장대한 석축을 이용한 산지가람으로 불국사 석축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의 절이름과 1669년 경주부윤 민주면이 간행한 동경잡기에는  원원사(遠願寺)로 표기되어 있지만 삼국유사에는 원원사(遠源寺)로 기록되어 있다. 원원사(遠願寺)는 ‘통일 신라의 영원한 번영을 원한다’ 는 의미를 지녔고, 원원사(遠源寺)는 ‘깨달음의 본질에 이르는 길이 멀고도 어렵다’는 의미를 지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에 밀교인 신인종을 처음으로 전한 명랑법사의 제자인 안혜, 낭융 등이 김술종, 김의원과 김유신 등과 뜻을 모아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신라의 서울 동남쪽 20여리 되는 곳에 원원사(遠源寺)가 있다. 속설에는 안혜 등 네 대덕(大德)이 김유신(金庾信), 김의원(金義元), 김술종(金述宗)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네 대덕의 유골을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모셨으므로, 이 때 문에 이봉우리를 사령산(四靈山) 조사암(祖師巖)이라고 불렀는바, 즉 네 대덕은 모두 신라 시대의 고명한 중들이다.

 

<삼국유사 명랑신인(明朗神印)조>


김유신이 활동하던 시기라면 7세기에 이지만 7세기의 유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현재 전하는 유적으로 볼 때 800년 전후의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삼국유사의 기록과는 130년 이상 차이가 난다. 나말여초에 이 절의 스님인 광학(廣學)과 대연(大緣)이 왕건을 따라 개성으로 가서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정치군사적 자문을 했다고 한다.


태조가 고려를 세울 때에 역시 해적이 와서 소동하므로 즉시 안혜(安惠)와 낭융(朗融)의 후예인 광학과 대연 등 두 중에게 청하여 비법을 써서 기도로 진압하였으니 모두가 명랑의 계통이다.

<삼국유사 명랑신인(明朗神印)조>


안혜, 낭융, 광학, 대연 등 네 대덕은 모두 신라 명랑법사의 후예들이고 원원사는 밀교인 신인종의 사찰이었던 것이다.

 

*현원원사 돌계단

 

*원원사 연당

 

*원원사터 석단

 

*원원사 석단은 불국사의 대석단과 닮았다.

 

*석단의 수구

 

*원원사 돌축대

 

*돌기둥. 용도를 알 수없다

 

*원원사터 돌계단과 삼층석탑

 

*돌계단

 

*석등

 

*석등 연화하대석

 

*석등 연화상대석

 

*동서 삼층석탑

 

*동서 삼층석탑

 

*동서 삼층석탑

 

*금당터

 

*금당터

 

*금당터 초석

 

*원원사 연못강당터

 

*용왕각

 

*용왕각

 

*용왕각 수로

 

*용왕각 연못

 

*용왕각 벽화

 

*원원사터 대석단

 

*원원사터 대석단

 

*원원사터 대석단

 

 

<2006.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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