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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정신적 고향 - 캔디

蔥叟 2018. 10. 23. 04:04

스리랑카 정신적 고향 - 캔디

 

Kandy

 

캔디는 인구 50만 명이 살고 있는 스리랑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내륙분지에 위치한 역사도시이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1815년까지 많은 외침과 내란에도 불구하고 2,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이자 지금도 스리랑카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향이다. 캔디에 관한 지명은 수도 없이 다양하게 불린다. 원래 지명이 카투불루 누와라’ Katubulu Nuwara였다는 학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센카다갈라 시리와르다나 마하누와라’ Senkadagala Siriwardhana Maha Nuwara를 정설로 믿는다. 이 의미는 찬란하게 발돋움하는 센카다갈라 위대한 도시라는 의미이다. 이를 줄여서 마하 누와라’The Great City로 부르곤 했다.

 

중간에 들어가는 센타다갈라에 관해서는 또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현재의 캔디 인근의 동굴에서 수행하던 존경받는 현자의 이름이 센칸다’Senkanda였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싱할라의 감포라 왕조 때 비크람바후 3Vikrambahu3의 부인 이름이 센타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명에 관한 많은 학설들이 난무하지만 어디서부터 캔디라는 이름이 나왔는지에 대한 근거도 없고 추정할 수 있는 단서도 없는 실정이다.

 

영국이 들어오기 전 포르투갈, 네델란드 식민시대에 간다 우다 라타’Kanda Uda Rata라 불렀다는데 이 의미는 산속의 땅이란 의미이고, 칸다우다 파스 라타’Kanda Uda Pas Rata로도 불렀다는데 이 의미는 산속의 다섯 나라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포르투갈은 이 긴 이름을 줄여서 칸디아’Candea로 불렀는데, 반면 싱할라 인들은 위대한 도시 혹은 수도를 의미하는 마하누와라’Maha Nuwara로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기에 지금까지도 콜롬보가 경제의 수도이도, ‘코데’Kote가 정치의 수도라면 캔디는 정신적 수도로 남아 있다.

 

캔디는 해발 500m의 고지대에 위치해서 저지대에 위치한 콜롬보에 비해 기온이 낮고 쾌적하여 스리랑카 부자들의 별장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도시는 분지로 형성되어 중심 도시에 외곽이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지형인데 이 산속에 별장들과 고급 호텔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긴 마하웰리 강의 중류에 위치한 캔디는 비교적 기온이 낮고 비가 자주 오는 기후로 인해서 세계적인 차의 대명사인 실론티와 싱할라 왕조의 부를 지탱할 수 있었던 향신료의 최대 산지이기도 하다.

캔디의 대표적인 볼거리로는 달라다 말리가와’Dalada Maligawa로 불리는 佛齒寺와 동양에서 최고로 크다는 페라데니아 식물원이 있다. 또한 시내에는 유색 보석의 천국답게 보석상들로 가득하다. 해마다 음력 7월 대보름이면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 최대의 불교축제인 엣사라 페라헤라’Esala Perahera가 열리는데 무려 10일간 진행된다. 6일간은 화려하게 장식된 코끼리 등에 부처님 치아사리를 안치해서 시가 행렬을 벌이고 나머지 4일간은 문화축제가 열린다.

 

캔디의 중심은 1807년 스리 비크라마 라자싱하 왕에 의해 조성된 캔디 호수이다. 라자싱하 왕은 싱할라의 마지막 왕으로 후궁들의 휴식처로 이 호수를 만들고 그 안에 아름다운 정자를 만들었는데 이 정자는 식민시대에는 왕족들의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옥이면서도 가장 슬픈 감옥이기도 하다. 이 호수 주변에는 궁전과 불치사, 그리고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캔디의 시가지는 표고 340m의 완만한 산들로 둘러싸인 좁은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북에서 번성했던 싱할라 왕조가 남 인도에서 건너온 침략자들에게 쫓겨 남하를 계속하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지리적으로 주위의 산들이 적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기에 유리한 장소이기에 영국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300년 이상 긴 세월동안 싱할라 문화의 꽃을 피웠다스리랑카에서도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라 불리듯이, 직접 그곳을 방문해 보면 차분한 이 도시의 분위기가 스리랑카 사람들이 지닌 특유의 온화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캔디로 계속 모여드는 사람들 때문에 주변 산에는 새로운 주택지가 들어섰지만 그래도 자연과의 조화는 잃지 않았다. 주변의 산들은 일찍이 북으로부터의 침략을 막아 주었듯이 지금은 도시화에서 캔디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 캔디의 자랑인 불치사는 석가의 치아가 안치되어 있어 불교도인 신할라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민족 최고의 상징이다. 캔디의 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이 절에는 참배자가 끊임없이 방문하고 있어 조용한 가운데 늘 붐비고 있다. 캔디 호에 비치는 이 절의 모습은 고요하고 유난히 아름다워서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조용한 캔디도 일 년에 한번, 여름에 행해지는 페라헤라 축제 때가 되면 아주 떠들썩해진다. 불치사에 안치되어 있는, 불치가 들어 있는 불사리가 화려한 옷을 걸친 코끼리의 등에 실려 캔디 시가지를 행진하는 것이다. 그 뒤를 전통 음악과 가무를 하는 사람들이 따르며 성대한 행렬을 펼친다. 그것을 보려고 스리랑카 전국,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캔디는 대단한 열기에 휩싸인다.

 

캔디의 번화가는 인공 캔디 호의 북쪽과 서쪽으로 뻗어 있다. 이 길을 중심으로 불치사나 박물관 등의 볼 만한 곳과 철도 역, 버스 터미널 등의 공공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호수의 남쪽과 동쪽은 호반 가까이 까지 완만한 능선이 연결되어 있어 산길을 따라 한적한 주택지가 들어서 있다. 비교적 잘 사는 가정 주택이 많고, 게스트 하우스를 겸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또 불치사 뒤편에 있는 북쪽 일대의 산은 우다왓테켈레 자연보호구로 많은 새들을 볼 수 있다.

 

이상이 시가지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여기서 3Km정도 앞을 흐르는 마하웨리 강까지의 지역에는 구릉 속에 작은 마을이나 부락이 흩어져 있다. 강 바로 앞에 있는 마을을 카투가스토타라 부르는데, 운반 등에 이용되는 코끼리가 이 부근의 강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시가지에서 남서쪽으로 6Km 정도 가면 페라데니아이다. 페라데니아는 스리랑카 최대의 식물원과 스리랑카 최대의 대학이 있어 캔디의 필수 관광 코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북쪽을 크게 우회해서 흘러온 마하웨리 강은 바로 이곳에서 그 흐름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꾸는데, 페라데니아 마을은 이 강의 건너편에 있다. 이 지역의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불교 사원들이 흩어져 있다. 14~18세기에 세워진 이들 사원은 벽화나 목조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캔디

 

▲캔디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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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2018.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