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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금강산 건봉사 연지

蔥叟 2017. 8. 16. 09:16

고성 금강산 건봉사 연지

 

건봉사는 6·25전쟁 이전까지는 31본산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520년(법흥왕 7)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원각사(圓覺寺)라 이름했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건봉사는 법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사실 법흥왕 7년이면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이고 아도화상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승려이기 때문이다.758년(경덕왕 17)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한국 만일회의 시초이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중건한 뒤 절 뒤쪽에 봉형(鳳形)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개칭했으며 1358년(공민왕 7) 나옹(懶翁)이 중수하고 건봉사로 다시 바꾸었다. 1464년 세조가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願堂)으로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을 짓게 되자 이때부터 역대 임금의 원당이 되었다. 6·25전쟁 전에는 대웅전·관음전·사성전·명부전·어실각·불이문 등 총 642칸에 이르렀으나 6·25전쟁 때 거의 폐허화되었다.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외에도 8기의 탑, 48기의 부도, 31기의 비석, 44점의 고승영정 등이 있었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우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은 개천을 따라 10리를 넘게 흘러갔다고 한다. 1878년 건봉산에 큰불이 나면서 당시 건봉사의 건물 중 3천칸이 소실되었다. 그 뒤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단지 절 입구의 불이문만 남아 있다.

 

낙서암 입구 현재 연못이 있는 곳에는 원래 연지라고 이름 붙여진 못이 하나 있었으며, 그 위로는 영월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영월’이라는 이름은 달을 맞이한다는 뜻이니 이 다리를 거닐며, 만월을 맞이하는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신심이 난다. 그 옛날 건봉사가 번성하던 시절에는 건봉사의 수많은 고고한 스님들과 청정한 불자들이 연꽃이 피어난 연지 위의 영월교를 걸으면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발원했을 것이다.

 

▲연지

 

▲연지

 

▲연지

 

▲연지

 

▲연지

 

▲연지 옆에 흩어진 석물들

 

▲연지 옆에 흩어진 석물들

 

▲연지 옆에 흩어진 석물들

 

 

 

<2017.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