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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터 부도탑

蔥叟 2017. 7. 17. 10:39

양주 회암사터 부도탑

 

회암사지 부도탑(檜巖寺址浮屠塔)은 양주 회암사지의 가장 뒤쪽 서편에 세워져 있다. 회암사지 부도탑은 정제된 조각 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감으로 볼 때, 제작 시기를 조선 전기인 약 15세기 중엽경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회암사지 부도탑이 승려의 부도인지 아니면 불탑인지, 만일 승려의 부도라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여러 이견이 있다.


회암사지 부도탑의 높이는 3.36m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부도 형식인 팔각원당형과는 달리 기단부가 높은 2층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위의 탑신부도 매우 높고 구형(求刑)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기단부는 널찍한 판자돌을 서로 잇대어 짠 팔각의 지대석(址臺石) 위에 다시 팔각의 하대석(下臺石)을 올리고, 각 면에는 용(龍)과 천마(天馬)를 새겼다. 그 위에 놓인 받침석의 각 면에는 넝쿨무늬를 새겼다. 하층 기단부 위에는 팔각의 괴임석을 놓고, 그 측면에는 당초무늬를 가득히 장식하였다. 하층 기단의 위에 놓인 팔각의 면석에는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하나씩 새겼는데, 깊이가 얕은 부조(浮彫)임에도 불구하고 조각 수법이 정교한 편이다. 그 위로 하층 기단부와 같이 넝쿨무늬로 장식된 괴임석이 놓였다. 구형의 탑신석 아래에는 3단의 받침석을 두었는데, 맨 아래 단과 윗단은 연꽃무늬로 복련(覆蓮)과 앙련(仰蓮)이 표현되었으며, 그 중간에 놓인 받침석은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곡면으로 처리하였다.

 

탑신석은 구형(球形)을 아무런 문양 없이 매끈하게 다듬었다. 처마가 짧게 나와 있는 옥개석(屋蓋石)의 하면에는 겹처마에 추녀와 사래가 표현되는 등 목조 건축물의 지붕에서 보이는 부재들이 나타난다. 옥개석 상면은 폭이 매우 좁은 반면 높다랗게 솟아 있어 급경사를 이루는데, 합각부에는 마룻장 기와가 표현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연꽃무늬의 복발 위로 앙화가 얹히고, 그 위로 2개의 두툼한 보륜과 팔각의 보개 그리고 보주를 순서대로 표현하였다.


회암사지 부도탑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새롭게 나타나는 부도 형식인 구형 부도에 속하는 예이지만, 높이가 3.36m로 그 중에서도 가장 높다. 그러나 회암사지 부도탑의 성격에 대해서는 부도탑인지 불탑인지 이견이 있다. 즉 회암사(檜巖寺)를 당대 최고의 사찰로 중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던 지공(指空), 나옹(儺翁), 무학(無學)의 부도와는 달리 회암사지 부도탑은 사찰 경내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회암사 경내에는 회암사지 부도탑 이외에 불탑(佛塔)이 없다. 이 때문에 회암사지 부도탑이 승려의 부도인지 아니면 불탑의 역할을 하는 특별한 예배 대상물인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선 전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형식의 불탑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한 승려의 부도탑으로 보는 경우에도 부도탑의 주인공이 나옹을 대신하여 회암사의 중창 불사를 마무리하였던 처안(處安)인지, 아니면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비호(庇護)를 받으면서 회암사를 중심으로 조선 전기에 불교계와 정치를 새롭게 혁신시키고자 하였던 보우(普雨)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부도탑

 

▲부도탑

 

▲부조 문양

 

▲부조 문양

 

▲부조 문양

 

▲부조 문양

 

▲부조 문양

 

▲부조 문양

 

▲부조 문양

 

▲부조 문양

 

▲부조 문양

 

 

 

<2017.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