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서동리 남화사터 삼층석탑
봉화군 춘양면 춘양중학교 안에 13.5m 거리를 두고 동·서로 마주 서 있는 2기의 석탑이다. 이곳은 신라의 사찰인 남화사 터로 알려져 있는데, 675년(문무왕 16)에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6㎞ 정도 떨어진 곳에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절이 폐사되었다. 두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받침돌과 아랫기단 중석을 각 면 1장씩, 모두 4장의 돌로 구성하고, 아래·위층 기단 모두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장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위층으로 갈수록 크기가 줄어드는 형태를 보인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간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장식으로는 서쪽 탑에만 노반이 남아 있다. 1962년 10월 탑을 해체·복원할 때 서탑에서는 사리공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99개의 작은 토탑이 발견되었다. 조형미와 아름다운 비례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3년 이들 두 탑은 해체수리가 이뤄졌다. 그 결과 동쪽 석탑 첫 번째 탑신석(탑 몸통) 위쪽에 마련된 사리공(사리구를 넣기 위한 구멍)이 발견되고, 그 안에서는 99기에 이르는 소탑(小塔)을 비롯해 곱돌로 만든 사리호와 사리 3립(粒)이 든 녹색 유리 사리병이 나왔다. 이처럼 미니어처화한 작은 탑을 만들어 실제 탑에 봉안하는 일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라는 불경에서 비롯된다. 이 경전에서는 다라니를 넣은 작은 불탑을 만들어 탑 안에 넣고 주문을 외우면 무수히 많은 사리탑을 만드는 효과를 가져와, 중생들은 수명을 연장하고 모든 병이 사라져 재앙이 소멸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서동리 삼층석탑 사리구는 8-9세기 신라 불교계 석탑에 집중적으로 안치된 성보(聖寶) 유물 중에서도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소탑 99점이 온전하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이 시대에 등장한 석탑으로 금동소탑이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곳으로는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필두로, 경주 구황리 삼층석탑, 705년경 건립된 경주 나원리(羅原里) 오층석탑, 화엄사 서(西) 5층석탑(755년 무렵 건립), 산청 석남사(石南寺) 오층석탑(766년), 경주 창림사(昌林寺) 석탑(855년), 봉화 취서사(鷲棲寺) 오층석탑(867년),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심초석 사리공(895년), 강원 선림원(禪林院) 삼층석탑, 대구 동화사(桐樺寺) 금당 서탑, 충남 보령 성주사(聖住寺) 석탑, 공주 동원리(東院里) 삼층석탑(이상 9세기 건립 추정) 등이 있다.
이런 석탑들의 조성 패턴은 지금까지 연구결과로는 고려시대 개막과 더불어 종말을 고한다. 고려시대 개막 이후 석탑에는 무구정경 대신 '보협인다라니경'이라는 새로운 불경이 안치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남화사터 삼층석탑
<2017.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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