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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두륜산 대흥사 무량수각

蔥叟 2016. 12. 20. 08:38

해남 두륜산 대흥사 무량수각

 

당시 이곳 대흥사에는 추사와 절친하였던 초의선사가 기거하고 있어 추사 김정희와의 교류가 이어지며 이웃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다산 정약용과도 교류 관계가 이어져 대흥사를 중심으로 한 이들 석학들의 차와 학문··서화 등 예술의 교류는 한때 새로운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다.

 

추사 김정희가 1840(헌종6) 제주도로 귀양가면서 대흥사에 들려 친구인 초의선사를 만났다. 이광사가 쓴 대흥사의 현판 글씨를 비판하며 초의에게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놓은 것이 원교 이광사인데 어떻게 그 사람이 쓴 대웅보전 현판을 걸어 놓을 수 있는가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는 직접 자신이 대웅보전의 현판을 써주고 갔다. 초의는 그의 극성에 못 이겨 추사의 글씨를 바꾸어 달아 놓았는데, 유배지 제주도에서 깨우침을 얻고 7년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다시 대흥사에 들린 추사는 전에 떼어달라고 했던 이광사의 현판글씨가 아직도 보관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의 아집을 사과드리며 다시 달아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대신 대웅보전 왼편 백설당에 무량수각의 현판을 써주었다 한다. 백설당에는 김정희가 쓴 '無量壽閣'이란 편액이 있다. 추사 김정희가 귀양가면서 쓴 무량수각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체에 비하여 획이 살찌고 윤기가 나는 미감을 보여준다.

 

▲무량수각


▲무량수각


▲무량수각


▲무량수각


▲무량수각


▲무량수각


▲무량수각

 

 

 

<2016.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