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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목탑의 재현 - 진천 보탑사 삼층목탑

蔥叟 2016. 8. 3. 08:31

신라목탑의 재현 - 진천 보탑사 삼층목탑

 

진천 연곡리 보련산에 있는 보탑사는 1996년 고려시대 절터로 전해지는 곳에 비구니 승려인 지광·묘순·능현이 창건하였다. 1992년 대목수 신영훈을 비롯한 여러 장인들이 참여한 불사를 시작하여 1996년 8월 3층 목탑을 완공하였고, 그 후 지장전·영산전·산신각 등을 건립하고 2003년 불사를 마쳤다. 보탑사의 부지면적은 약 13,000㎡, 연면적은 약 500㎡이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모델로 만든 3층 목탑의 높이는 42.71m로, 상륜부[9.99m]까지 더하면 총 높이가 52.7m에 이르는데 이는 14층 아파트와 견줄 만한 높이이다. 목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모두 29개이다. 강원도산 소나무를 재료로 하여 전혀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지어졌다.

 

보탑사는 1층 대웅전, 2층 법보전, 3층 미륵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은 대웅전 199㎡, 법보전 166㎡, 미륵전 136㎡이다. 대웅전에는 사방불[동방 약사우리광불, 서방 아미타여래불, 남방 석가모니불, 북방 비로자나불]이 배치되어 있으며, 법보전에는 윤장대(輪藏臺)[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장]를 두고 팔만대장경 번역본을 안치했고, 총 9t의 돌판에 한글법화경을 새겨 놓았다. 미륵전에는 화려한 금동 보개 아래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2층과 3층 외부에는 탑돌이를 할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그밖에도 보탑사에는 장수왕릉[장수총]을 재현해 만든 지장전, 너와지붕을 얹은 귀틀집 형식의 산신각, 부처가 500명의 비구들에게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한 영산전, 와불 열반적정상을 모신 적조전을 비롯하여 범종각·법고전·불유각(佛乳閣)·삼소실(三笑室) 등의 건축물이 조성되어 있다.

 

“나에게 전통건축가로서의 긍지를 갖게 한 작품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보탑사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1974년부터 수많은 한옥을 지어온 문화재보수기술자 김영일(74)씨가 ‘한옥, 사람이 살고 세월이 머무는 곳’(청아출판사, 2014)에서 자신 있게 밝힌 대목이다. 1991년 공사를 시작해 3층 목탑을 짓는데 5년이 걸렸고 2014년에야 부속건물 공사까지 마쳤으니 완공까지 꼬박 23년이 걸렸다. 내력으로만 보면 천년 고찰이 수두룩한 한국불교건축사에 명함도 못 내밀 신생 사찰이지만 보탑사에는 신영훈 초대 한옥문화원원장, 단청명인 고 한석성, 도편수 고 조희환을 비롯해 도공, 와공, 석공, 야철장, 조각장 등 문화재급 한옥전문가들의 집념과 기술력이 응축돼 있다.

 

파르스름한 물빛이 규모에 비해 제법 깊어 보이는 연곡저수지를 지나 만뢰산(혹은 보련산, 612m) 자락에서 흘러내린 아늑함이 느껴지는 계곡이 위압적이지 않다. 올망졸망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지세가 꼭 한 겹 두 겹 피어나는 연꽃잎을 닮았다. 저수지를 지나 약 1km 정도 좁은 도로를 오르면 길이 끝나고, 이 산골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웅장한 건물을 만난다. 대부분 산사는 숲과 나무에 가려져서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42.73m, 아파트 14층 높이의 보탑사 3층 목조건물은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식명칭은 ‘보련산 보탑사 통일대탑’, 신라의 황룡사 9층 목탑이 삼국통일을 기원하듯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이름이다. 탑이 세워진 곳은 연꽃의 한 가운데 꽃술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보탑사 이전까지 국내에는 보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화순 쌍봉사 대웅전(보물 제163호) 등 2개의 목탑만 전해왔다. 외관은 각각 5층과 3층이지만 실제 1층만 들어갈 수 있고 위로는 올라갈 수 없다. 보탑사 통일대탑이 이 두 목탑과 가장 다른 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1층 대웅전에서 2층 법보전, 3층 미륵전이 내부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일반적인 사찰에서 최소 3개 전각이 필요한 것을 하나의 목탑에 전부 넣은 셈이다.

 

김영일씨는 “최대한 옛 백제 장인 아비지가 만들었던 황룡사 목탑의 양식을 현대에 복원한다는 기분으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가며 공사를 했다”고 회고한다. 아파트 27층에 해당하는 80m 높이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 남아 있는 목탑도 거의 둘러봤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영감을 준 것은 경주 남산 탑골의 바위에 새겨진 목탑 조각이었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보탑사 통일대탑은 겉모습만 특이한 게 아니라 내부구조도 다른 사찰과 많이 다르다. 보통 대웅전은 정면에 하나의 불상을 모시지만, 통일대탑 1층엔 찰주(擦柱, 불탑의 중심기둥)를 중심으로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여래불, 약사여래불 등 사방에 부처를 모셨다. 찰주는 999개의 석탑으로 장식해 통일대탑까지 1,000개의 탑이 완성되도록 했다.

 

겉보기는 3층이지만 각 층 사이에 2개의 숨겨진 층(암층)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옥에서 천장과 지붕 사이 공간에 다락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1~2층 사이 공간은 불상의 머리 위라는 점을 감안해 개방하지 않고 있지만, 2~3층 사이 암층은 전시실과 강연장으로 유용하게 사용한다. 겉에서 보이지 않아 암층이라 하지만 일반 가정집보다는 천장이 높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또 2층 법보전과 3층 미륵전의 문을 열면 주위로 마루 난간을 설치해 탑돌이 하듯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했는데, 평시에는 문을 닫아 놓은 점이 아쉽다.

 

통일대탑 뿐만 아니라 부속건물과 공간배치도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매년 초파일을 전후해 약사여래불 앞에는 신도들이 수박을 많이 올리는데, 동짓날 팥죽을 나눌 때 이 수박도 함께 나눠 먹는단다. 불전에 놔둔 수박이 약 7개월이 지나도록 상하지 않고 젤리처럼 말캉말캉한 상태를 유지한다니 믿기지 않는 얘기다. 사실관계는 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바람·비·햇빛 등 여러 자연요소를 고려해 가람을 배치했다는 설명을 들으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보탑사 앞에는 수령 350년 된 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김영일씨는 “거기서 올라오는 바람이 바람개비처럼 부속건물의 지붕을 타고 북쪽으로 빠져나가도록”해서 통일대탑 지붕에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도록 설계했다고 적었다.

 

통일대탑의 위용에도 불구하고 보탑사는 근엄함과는 거리가 있다. 부속건물 주위는 웬만한 정원 못지않게 꽃과 나무로 어우러져 있고, 그것도 모자라 갖가지 야생화를 모은 대형 화분으로 통일대탑 주변을 장식했다.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단청이 바닥에 떨어진 듯, 절간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봄날 꿈길처럼 아련하다. 통일대탑에는 현재로선 확인 불가능한 비밀도 숨어있다. 3층 미륵전 위 불탑의 꼭대기 부분에 능엄경·법화경 등 불교 경전과 사적기(寺跡記)를 보관한 타임캡슐을 넣었는데, 불기 3000년인 서기 2456년에 공개할 예정이다.  440년 후 보탑사가 어떤 모습일지,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삼층목탑

 

▲상륜부

 

 

 

<2016. 7. 16>